[월요인터뷰] 3일 부처님오신날…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분노·욕심에 속지 말아야 지혜로운 삶…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행복"

연등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달아주는 행복의 불빛
죽어야 산다는 사중득활의 자세로 살아야 어려움 극복
한반도는 구한말 같은 위기…큰 정치 엮어낼 지도자 필요
진보·보수에 집착하는 건 스스로를 편견에 가두는 일

만난사람=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충남 예산 덕숭산 정상 아래에 있는 능인선원 쌍탑 앞에서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이 “연등은 모든 이의 마음에 달아 주는 지혜와 행복의 빛”이라고 강조했다. 수덕사=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부처님 오신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뤘다. 세간의 뜨거운 이슈인 대통령 선거가 먼저였다. 충남 예산 덕숭산 정상(495.2m) 아래 정혜사에서 만난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雪靖) 스님(76)과의 만남에서다. 총림은 참선하는 선원, 계율을 공부하는 율원, 경전을 익히는 강원 등의 교육 기능을 두루 갖춘 사찰. 총림의 제일 어른이 방장이다. 설정 스님은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하는데 ‘선거의 선수’들이 엮어내는 포퓰리즘 공약 같은 건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국가지도력 공백기와 맞물린 한반도의 위기 상황부터 대선 과정의 갈등, 청년실업과 노사문제에 이르기까지 걱정의 범위도 넓다.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의 일 앞에서 승속(僧俗)이 따로 있겠는가.

▷이번 대선에서 뭐가 제일 걱정입니까.“후보들의 진정성입니다. 국가 지도자가 되려고 나섰으면 표만 의식해 말할 게 아니라 정치철학과 국가 운영 비전 등을 진정성 있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도자라면 인격이나 덕성, 틀이 다른 사람보다 좀 낫고 특별해야죠. 옹졸하지 않고 통이 큰 분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국민을 가족처럼, 부모처럼 모시고 자기의 정치적 야망이나 명예, 돈에 연연하지 않는 분 말입니다.”

▷좋은 지도자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국가관과 통치철학, 양식과 도덕성, 신념을 봐야죠. 진실불허(眞實不虛)라, 진실은 헛되지 않습니다. 자신과 남을 속이지도, 속지도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의 심복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야지 군림하려 해선 안 됩니다. 무엇보다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공권력이 확고부동해져요. 또 하나, 통치자 주변 인재들이 좋아야 합니다. 다만 그들이 패거리를 만들고 패권주의로 가면 안 되죠.”▷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심각합니다.

“요새 상황을 보면 구한말과 비슷합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한반도를 놓고 우리는 빠진 채 자기들끼리 회담을 합니다.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전쟁입니다. 전쟁이 나면 부서지는 건 한반도요, 죽는 건 한민족입니다. 다 부셔놓은 다음엔 한반도가 국제적인 장마당이 될 거고요. 이런 열강의 틈에서 자주독립을 지키고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큰 정치를 엮어낼 사람이 누구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중득활(死中得活)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죽어야 삽니다. 명예나 돈은 관리할 대상이지 집착할 대상이 아닙니다. 집착하면 패거리가 생기고 패거리는 부패를 낳습니다. 국민 각자가 사중득활을 모토로 살면 어떤 난관이든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3일)이 모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익산미륵사지 석탑을 본뜬 대형 탑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전국의 산사는 물론 서울 광화문, 종로, 청계천 등 도심 곳곳에도 오색 연등 물결이다. 지난 주말엔 봉축행사 하이라이트인 연등축제도 열렸다.

▷연등을 달 때 스님들은 어떤 생각을 합니까.“등불은 상징적인 겁니다. 어둠이 불행과 고(苦·괴로움)의 원천이라면 밝음은 행복이고 해탈을 의미합니다. 연등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달아주는 행복의 등불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진리의 등불을 밝히라(自燈明 法燈明)고 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탁한 생각 없이 맑은 생각으로 세상과 중생을 바라보고 자기 삶을 가꿀 것인지 절실하게 반조해보는 시간이 부처님오신날이고 등을 켜는 일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 즉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삶에서 갈등과 분노와 시비, 격정이 끓지 않는 상태가 정(定)입니다. 그럴 때 오는 것이 맑음(淨)이고요. 중생의 괴로움은 탁(濁)이고 암(暗)입니다. 탐심과 분노, 오욕에 대한 집착에서 어둠이 비롯되고, 그 어둠이 결국 자기를 불행하게 하지요. 그런 분노와 욕심, 시비와 갈등에 현혹돼 끌려다니지 않는 부동(不動)의 삶을 살자는 것이지요.”
▷스님들이 너무 몸을 안 써서 걱정이라고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편하게 살면 남의 어렵고 힘든 사정을 모릅니다. 힘든 노동을 하다 보면 상대를 이해하고 어려움을 알게 됩니다. 논밭 농사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승려들이 전문성을 갖고 경제, 복지, 의료, 문화 등 모든 걸 다했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스님들이 탱화도 그리고, 기와도 얹고, 목수도 하고, 농사도 지었죠. 요즘은 특히 절에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그깟 문화재관람료는 안 받아도 됩니다. 좀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수행도, 울력도 젊은 스님들과 늘 함께한다고 들었습니다.

“나이 드니까 힘에 좀 부치기는 하지만 일머리를 모르는 요새 사람들보단 낫지요. 처음엔 채소와 잡초도 구분하지 못하는 젊은 스님도 꽤 있거든요. 여기서 2~3년 살면 농사 기초는 배웁니다. 저는 어려서 절에 들어와 일을 참 많이 했어요. 공양간(부엌) 소임이 끝나면 밤늦게까지 새끼도 꼬고 멍석도 만들면서 꽁지가 빠지게 일했죠. 요새 같으면 아동 노동착취라고 했겠지만 그 시집살이가 평생의 재산이 됐습니다.”

설정 스님은 최근 조계종 원로의원에 선출됐다. 하지만 축하 인사가 반갑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 부탄으로 순례를 떠나면서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도 다녀오니 이렇게 해놨더라”며 “부족한 사람에게 과분한 짐”이라고 말했다.

▷부탄은 행복지수 1위 국가라는데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습니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주 순박했어요. 사람들이 근심 걱정 없이 밝고 쾌활해서 좋았습니다. 불교국가여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 행복, 탐진치에 대한 경계 등이 국민 심성에 담겨 있어요. 지위든 재물이든 명예든 남의 것을 시기·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자기 삶에 충실한 게 행복의 비결인 것 같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지거든요.”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가진 사람이나 기업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입니다. 법이 정확하게 집행돼야 해요. 탁부(濁富·탁한 부자)가 설치는 걸 용납하면 안 됩니다. 대신 청부(淸富·깨끗한 부자)는 어떤 경우에도 장려하고 기려야 합니다. 탁부를 욕하면서 청부까지 잡으려고 하면 안 되죠. 외국으로 공장을 옮겨가는 기업인들이 국내에선 속 터져서 못해먹겠다고 해요. 노동조합이 경영현실을 외면한 채 더 많은 걸 끊임없이 요구하고 경영에도 ‘감 놔라 배 놔라’ 한다고요. 기업도 노조도 서로 잘잘못이 있게 마련인데 극단으로 치달으면 결국 피해를 주게 됩니다.”

▷편 가르기의 폐해도 심각합니다.

“명상(名相·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은 편견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누구는 진보주의자, 누구는 보수주의자 하는데 그런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말로 스스로를 상징해놓고 정치를 하면 융통성이 있겠습니까. 나라가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를 한 그릇에 담고 필요할 때마다 골라서 써야 합니다. 지금처럼 하면 나라 망해요. 말에 집착하면 일을 그르칩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일자리가 문제다.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도 일자리 창출이다. 설정 스님은 “일자리가 없다면 시골로 오라. 사찰로 오라. 일거리가 천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갈했다. “인생은 결국 자기가 사는 겁니다. 노력한 만큼 삶이 만들어져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탄만 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뭐라도 해야 합니다. 움직이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겁니다.”

■ 설정 스님은

설정 스님은 근세 선불교의 중흥조로 꼽히는 경허 선사에서 이어지는 만공~원담의 법맥을 이었다. 열세 살이던 1954년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수덕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고, 1994년 조계종 개혁에도 참여했다. 행정(사판)을 하면서도 참선 수행(이판)을 놓지 않아 이(理)와 사(事)를 겸전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부드러운 성품이지만 일이나 목표 앞에선 독한 편이다. 군 복무 뒤 31세에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원예학과에 진학했다. 종회의장을 마친 직후 췌장암에 걸렸을 땐 “내가 다시 산다면 결코 편하게 살지 않겠다”며 참회 정진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성격이다. 1980년 10·27 법난 때 대전 보안대에 끌려가서는 자술서를 쓰라는 강요와 협박에도 사흘 동안 단식 좌선으로 버텼다.

흰 눈썹 휘날리는 신선 같은 풍모지만 법문은 쉽다. 한문을 많이 인용하기보다는 일상의 언어로 전하기 때문이다.설정 스님은 지금도 가끔 운전을 한다. 주위에서 말리면 “80세, 85세까지는 할 것”이라며 “그래 봐야 얼마 안 남았다”고 응수한다. 삶을 타인에게 의지하면 반쯤은 죽은 인간이라는 생각에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