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대선 토론과 트럼프의 청구서

재원 없는 공공일자리 대선공약
미국선 "자격미달" 소리 나올 것
북핵 위협 큰데 상황인식 안이해

유진철 < 전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
1970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 50년이 다 돼 간다. 미국에서 살면서 경찰과 군, 기업, 시민단체를 거쳐 정치에도 도전했다. 처음엔 나 자신이 잘살기 위해서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미국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러나 요즘은 떠나온 조국, 한국에 대한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때가 적지 않다.

한국의 19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TV토론회를 계속 보고 있다. 토론을 보고 나면 걱정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진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후보들이 내건 공약부터가 우려를 자아낸다. 며칠 전 토론회에서 모 후보는 공공 일자리 수십만개를 만들겠다는 다른 유력 후보에게 재원 대책이 있냐고 추궁했다. 유력 후보는 답을 얼버무리다 “자세한 얘기는 우리 정책본부장과 얘기하라”고 했다.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후보를 사퇴해야 했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두 번 출마했다. 미국은 유세장이든 토론회든 수많은 질의응답이 오간다.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곧바로 “자격 미달”이란 지적과 야유를 받는다. 하물며 대선후보야 어떻겠는가.

저마다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하면서 성장보다 분배와 규제를 더 강조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이다. 일자리는 누가 만드는가. 기업들이다. 영세기업이 소기업으로,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중기업이 대기업이 되도록 지원하고 독려해야 일자리가 생긴다. 규제와 개입은 답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개입해 경제를 망친 경우를 우리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에서 수없이 봐 왔다.

한반도 상황을 생각하면 더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핵을 해결하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동원할 수 있는 외교력과 군사력을 모두 한반도에 집중하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이 이해당사국들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어찌 변할지 모르는 엄중한 시기다. 한쪽만 오판(誤判)해도 한반도가 화약고로 변할 수 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지난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캠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전해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미국은 북핵 해결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 2020년 차기 대선도 ‘북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한다.

한국 대선후보들이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 후보들은 중복지 중부담, 복지 재원 문제, 담뱃세 인하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한반도 운명과 관련해서는 기껏 논하는 게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초고속으로 변하는 데 대선후보들은 말싸움이나 하고 있는 꼴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국가 간 거래는 그렇다.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언젠가 한국에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인근에 펼쳐놓은 전략 자산과 군사 작전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사드 비용도 한국이 지급하라”고 했다.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말싸움이나 하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작전 비용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유진철 < 전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