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착한 기업'이라야 지속가능하다

"신뢰 높이면 경제 1.5%P 추가성장
기업도 사회적가치 창출해야 '생존'
공공성 높이는 정책경쟁 넘쳐나길"

이재열 < 서울대 교수·사회학 >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말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다가올 미래가 예전의 미래와 다르다는 데 있다”고. 미래학자들은 초(超)연결에서 그 단서를 찾는다. 닫힌 위계가 열린 네트워크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짝퉁이나 양산하는 ‘대륙의 실수’라 불리던 중국 샤오미가 불과 몇 년 만에 전통적 제조업 강자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미래 모델로 떠오른 비결도 위계적 내부화 대신 제조와 유통을 연결하는 열린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계산능력, 메모리의 집적, 태양열 발전효율 등 기술적 연결 인프라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한계비용을 제로(0)로 만들어가는데 정작 인간 능력은 제자리다. 그 격차가 벌어져 소위 ‘특이점’을 지나면 초연결된 사회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원자력 발전과 거대한 송전탑 대신 들어설 분산형 태양광 발전은 관치경제를 대치할 공유경제나 대의민주주의를 대신할 풀뿌리 민주주의와 동형구조다. 조직 없는 조직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통제 대신 자율이, 개별 전문가 대신 집합지성이, 구체적 성과 대신 사회적 영향력이, 명령 대신 공감이 더 중요해진다면 이윤창출 대신 가치 창출이, 경쟁 기반 과잉소비 대신 신뢰 기반 협력적 소비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기술적 토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다. 강력한 사회적 규범은 시장경제를 번영케 하는 토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에서 내려오는 육훈(六訓)이 강조한 사회적 가치는 빈곤해소, 지속가능한 공동체, 책임 있는 소비, 파트너십 등 17개 항목으로 구체화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다. 경제의 효율성이나 성장가능성에 보태 사회의 조화로움과 환경적 책임성을 지향하는 한국의 국가주요지표가 담은 가치지향 또한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착한’ 나라가 더 잘산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현재 한국과 비슷한 소득수준이던 20~30년 전 약자배려, 공정성, 개방성, 시스템 규율 등의 선(善)인프라를 더 잘 갖추고 있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도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북유럽 수준으로 높아지면 1.5%포인트 추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예측한 바 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착한 기업’이라야 지속가능하다. 기업은 기술·경제적 효율성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지만 열린 환경에 노출될수록 정당성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터인데, 그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느냐의 문제다. 유엔은 198개 가입국 정부에 각자 사정에 맞춰 300개의 지표를 만들어 지속가능발전을 모니터링하도록 권고했다. 통계청은 300여개의 지표로 국가 발전과 국민 삶의 질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해 온 SK는 최태원 회장의 제안에 따라 93개 기업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한 뒤 그 가치에 대해 올해 48억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착한 기업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룹사 정관까지 바꿔 사회적 가치 추구를 명문화했다.4차 산업혁명은 대통령 공약만으로 오지 않는다. 관치의 틀을 과감히 내려놓고 초연결시대에 걸맞은 미래형 사회적 인프라를 꾸준히 구축해야 가능하다.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대폭 창출할 수 있게 창의적 혁신의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영리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상생하는 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착한 성장사회’를 열어가는 정치 리더십과 새로운 정부역할, 그것은 사회의 질적 수준과 공공성을 높이는 데서 출발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정치의 계절,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지 정책경쟁이 넘쳐나기를 기대한다.

이재열 < 서울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