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베네수엘라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베네수엘라. 이탈리아어로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이다. 15세기 이곳을 발견한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수상가옥들이 늘어선 풍경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이자 미스 유니버스를 가장 많이 배출해 부(富)와 미(美)를 상징하는 나라로 불리기도 했다. 지상천국처럼 보이는 이 나라의 현실은 그러나 생지옥과 다름없다.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반(反)정부 시위로 도시 곳곳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먹거리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혼란의 직접적 원인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다. 2015년 선거에서 의석 3분의 2를 차지한 야권이 마두로 대통령의 탄핵과 국민소환 등을 추진하자 친(親)마두로 성향의 대법원이 지난 3월 의회해산 판결을 내렸다. 야권은 이를 마두로의 친위 쿠데타로 규정, 본격적인 가두투쟁에 나섰다. 그러자 마두로는 헌법 개정을 위한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등 ‘강(强) 대 강’으로 맞서는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30여명의 시위대가 숨지고 수백명이 다치는 불행한 일도 발생했다.비극의 근본적인 배경은 파산 지경에 이른 경제에 있다. 베네수엘라는 ‘오직 석유 하나로 먹고살아온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시절, 그저 내다 팔면 돈이 됐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좌파 정부는 석유산업 국유화와 석유를 판 돈을 무기로 ‘자원민족주의’를 내세워 반미 전선에 앞장섰다. 대내적으로는 ‘그랑 미션’이라는 복지 포퓰리즘을 통해 무상주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무상 시리즈를 쏟아냈다.

2012년 이후 유가 급락은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재정은 펑크 났고 이를 메우기 위한 화폐 남발은 살인적 인플레와 환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외환보유액은 10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으며 2015년 197%이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00%에 달했고, 올해는 1600%를 넘을 전망이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지난해 국민 4명 중 3명의 체중이 평균 8.7% 줄었을 정도다. 인구 10만명당 살인이 119건으로 전쟁지역을 제외하고 세계 1위라는 오명도 쓰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자원에 편중된 경제, 성장이 아니라 분배에 치중하는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도 국내 선거판에는 임금과 복지를 늘려 경제를 살리자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버젓이 내걸려 있다.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눈앞에 보면서도 남미행 열차에 올라타자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