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좋든 나쁘든, 세상을 바꾸는 건 분노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 있는 집 / 424쪽│1만4800원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의 첫머리다. 일리아드의 거대한 서사는 분노에서 시작한다.

‘철학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분노가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한다. 발전과 변화의 중심에 분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에서 ‘분노’라는 키워드로 세계사의 변천을 조망한다.저자에 따르면 분노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변모시킨 주체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프랑스 대혁명의 원천은 시민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였다. 2015년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사상 최악의 프랑스 폭탄 테러 사건에는 분노라는 씨앗이 숨겨져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 20세기 전체주의는 분노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활용했다. 저자는 “현실적으로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정치인이 자신의 이해에 맞게 분노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하느냐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며 “모든 역사는 분노에 의한 투쟁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는 “분노의 본질을 깨닫고 진정으로 분노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민족주의 등 이데올로기나 종교에 치우쳐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분노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고 있으며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탄핵 정국을 거쳐 장미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