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1] "국민통합, 정권 성패의 시작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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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 성공 조건누구나 성공하는 대통령을 꿈꾸며 청와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5년 뒤 청와대를 나설 때의 평가는 냉혹했다. 한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성공한 대통령’이란 박수를 받으며 떠난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난 대통령도 있었다.
● 누가 집권하든 여소야대…반대편 포용해야
●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정파 이익' 버려라
● 인기 없는 정책 밀어붙이는 용기가 박수 받아
환란 고통분담 호소한 DJ…한·미 FTA 밀어붙인 노무현 전 대통령 '박수'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
다음 정부는 시작부터 우호적이지 않다. 누가 되더라도 지지율 40% 안팎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거꾸로 말하면 60%의 반대 속에 국정을 시작해야 한다. 정치 역학구도 또한 만만치 않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거란 얘기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광장 민심’까지 요동칠 수 있다.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경제신문은 전두환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전직 대통령 여섯 명의 회고록과 각종 기록, 전문가 평가 등을 통해 각 정권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차기 대통령이 귀담아들어야 할 여섯 가지 성공 조건을 정리했다.
전직 대통령들의 출발은 비슷했다. 당선 전에는 특정 정파 대표였지만 당선된 순간부터 모든 국민의 대표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대통합과 탕평인사. 역대 대통령의 공통된 취임 일성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실천에 옮긴 이는 없었다. 정부 수립 이후 첫 진보 정부를 탄생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단히 통합에 힘썼다. 지지세력 사이에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는 반대로 갔다. 선거 승리 나흘 만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협의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복권을 이끌어냈다. 인사에서도 ‘측근 배제’를 첫 번째 원칙으로 밝혔다. 하지만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원칙은 무너지고 말았다.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이끈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통합과 탕평인사는 역대 대통령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작이자 끝이었다”며 “다음 정부도 누가 집권하든 적폐 청산보다는 반대편을 끌어안는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역대 대통령들은 국민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대화와 타협’을 네 가지 국정원칙 중 하나로 내걸 만큼 소통에 힘을 쏟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퇴임 후 쓴 미완의 회고록에서 소통에 실패했다고 자인했다. 외환위기 직후 절망에 빠진 국민과 TV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하며 희망을 불어넣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 우군이었던 노조 등과 대화가 안돼 애를 먹었다.
권력을 독점하기보다는 참모들에게 믿고 맡기는 대통령이 성과를 냈다. 신군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민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였다. 그는 김재익 당시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정책의 모든 권한을 맡겼다. 정부 주도 정책은 시장 중심으로 바뀌었고, 관료들은 소신껏 일했다. 경제를 애먹였던 물가가 한 자릿수로 잡힌 것도 이때였다. 전 전 대통령의 관료 신뢰는 경제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하게 된 배경 중 하나가 됐다.
이념이 아니라 현실, 교과서가 아니라 시장을 중시한 대통령이 지지를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전 ‘쌀 시장개방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집권 후 현실은 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개방의 파고가 들이닥쳤다. 공약에 집착하다간 오히려 더 큰 ‘파이’를 내줘야 할 형국이었다. 결단 끝에 대국민사과를 통해 “쌀 시장개방 반대 공약은 대선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된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하고 정책의 방향을 틀었다.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제왕적 대통령’을 꿈꿨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히 국회와의 관계 때문에 임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한 이들이 많았다.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인 대통령이 당시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국민 다수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외환위기 초입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난 극복을 위해선 개방과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국민에게 뼈를 깎는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였다.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는 지지층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후대에 용기 있는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