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미국 연방수사국(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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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미국 연방수사국(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의 역사는 100년이 훨씬 넘는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8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사건 등을 전담할 수사국을 법무부 산하에 설치한 게 효시다. 처음엔 비밀 요원 34명의 단출한 조직으로 출발했다. 주를 넘나드는 범죄가 늘어나면서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다. 지금의 FBI 직원은 3만5000명을 넘는다.
FBI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존 에드거 후버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법무부에 들어간 그는 마피아·무정부주의자 소탕에 공을 세워 29세 때인 1924년 수사국장에 임명됐다. 10년 뒤인 1934년 그는 수사국을 법무부에서 독립시키며 이름도 FBI로 바꿨다.후버는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FBI 수장으로 재직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48년간 미국을 지배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워싱턴DC에 있는 FBI 건물은 그의 이름을 딴 ‘J 에드거 후버 빌딩’으로 불린다. 후버가 재직하는 동안 거쳐 간 대통령이 8명이나 됐지만 그를 함부로 자르지 못했다. 자신이나 정적에 대한 ‘비밀 파일’을 가진 그가 두렵기도 하고 탐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혼외정사 문제로 후버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후버가 사망했을 때 그의 사무실을 봉쇄하고 샅샅이 뒤졌다. 자신에 관한 ‘비밀 파일’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으로부터 ‘종신직’을 보장받았던 후버가 세상을 뜬 뒤 국장직 임기도 10년으로 줄었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연장할 수 있게 됐다.
FBI가 법무부에서 독립한 이후 7명이 국장직을 맡았다. 이 가운데 임기 중 해임된 사람은 지난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해고한 제임스 코미를 포함해 2명뿐이다. 임기가 2023년까지였던 코미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조사해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대통령 측근의 러시아 내통의혹 수사’ 문제로 트럼프와 대립하다가 전격 해임되면서 미국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미국 신문들은 그가 전격 해임된 것은 트럼프의 ‘충성 맹세’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최고 권력자에게는 정보기관 수장이 ‘양날의 칼’로 여겨진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에 자신도 걸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FBI 국장도 대통령의 신임과 견제 사이에서 끝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니, 막강한 권력자이면서 한없이 고독한 존재가 아닐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