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실패하면 끝" 몸 사리는 방산…수출도 뚝

과도한 규제에 활력 잃어

정부 '세계 일류' 성능만 요구…혁신적 무기개발 시도 사라져
현대로템, 예산 200억 토해내…풍산 '철갑탄'도 개발금 환수
업계, 방산법 개정 추진
국내 방산업체들이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활력을 잃고 있다. 정부가 단기간 내 세계 일류 수준의 성능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제재를 가하면서 혁신적인 연구개발(R&D) 풍토가 사라지고 ‘몸사리기’에 들어간 업체들만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수주전서 ‘족쇄’
국내 방산업계에서 새로운 무기 개발에 실패한다는 것은 커다란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과 같다. 받은 예산을 토해내는 것은 물론 정부의 무기 개발 시 입찰 자격이 박탈된다. 정부 제재 사실이 공개돼 해외 수주 경쟁에서도 ‘청렴성 평가’에서 타격을 입는다. 법무법인 광장의 김혁중 변호사는 “실패 경험이 쌓여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데, 이제는 새롭고 도전적인 무기를 만들려는 의지가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 전차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은 차기 전술교량 개발에 6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55m)에 근접한 53m급 교량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군 목표치(60m)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방위사업청이 200억원의 예산을 환수해갔다. 방사청이 현대로템의 노력을 감안해 입찰 참가제한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자 감사원은 뒤늦게 방사청을 제재했다.
국내 최대 방산기업인 (주)한화는 받은 예산의 3~4배에 달하는 R&D 비용을 투입해 ‘무유도탄’을 개발했다. 성능도 정부 요구를 충족했으나 정부가 미국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하면서 난항에 빠졌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승인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한화는 개발을 포기하고 입찰 참가제한 처분을 받았다.

세계적인 탄약생산업체 풍산은 선박의 두꺼운 철판을 뚫고 폭발하는 ‘철갑탄’을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하지만 정부의 높은 기준을 맞추지 못해 개발금도 환수당하고 입찰제한 처분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은 1500억원을 들여 수상 구조함 ‘통영함’을 건조했지만 하도급업체에 문제가 발생하자 원청업체로서 책임을 지라는 지시를 받았다. 작년 건조대금의 60%에 달하는 900억원의 지체보상금도 물게 됐다.◆재기 기회주는 방산발전법 추진

국내 방산업계의 작년 해외 수주는 25억4800만달러로 전년(34억9000만달러)보다 27% 줄었다. 정부의 제재가 잇따르면서 국내 업체들이 해외 수주 경쟁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 방산업체들의 수익성도 글로벌 방산업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작년 록히드마틴의 영업이익률은 11.5%였고, 하니웰과 레이시온은 각각 19.4%와 13.3%에 달했다. 반면 한화테크윈은 4.2%, LIG넥스원은 4.7%에 그쳤다. 정부의 과도한 원가 통제와 가격 위주의 ‘저가 입찰’ 유도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유일의 자주포 생산업체인 한화테크윈의 K9자주포는 대당 군 납품가격이 38억원으로 20년 전(37억원)과 거의 같다.국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행 방위사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방위산업발전법’에 대한 국회 법제실 검토가 진행 중이며 다음달 공청회를 거쳐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R&D 수준이 목표에 미달해도 바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 ‘성실실패제’ 도입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2014년 도입된 제도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 등 방산선진국에선 모두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술개발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