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 교수 2인에 떨고 있는 기업들

'강경론자' 최정표,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지주회사 요건 강화 주장
'현실주의자' 김상조,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4대 재벌 개혁 우선 집중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 기반 마련…공정위원장 후보로 거론
“재벌개혁은 교수들에게 물어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일자리를 챙기는 것과 동시에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하면서 기업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재벌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64)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55)가 시민단체 대표 출신 대학교수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최정표, 재벌개혁 ‘강경론자’

최 교수는 기업 독과점을 전공한 1세대 교수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1983년부터 34년간 학교에서 공정거래법을 강의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공정위 비상임위원으로 6년간 실무를 경험했다.

최 교수는 재벌개혁 강경론자로 분류된다. 재벌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이다. 그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창업 3, 4세대의 국내 대기업 오너들은 회사를 물려받는 과정에서 경영 능력 검증이 없었다”며 “세습 왕정과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처럼 창업주면서 전문경영인 자격을 갖춘 사람을 적극 육성해야 하지만 능력 없는 오너들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최 교수는 이를 위한 수단으로 ‘공정거래법 강화’를 제시했다. 공정위 관료들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 규제’로 판단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도 “10대 그룹으로 한정해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및 근로자에게 이사 추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당시 문 후보의 공약도 최 교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최 교수는 재계에서 선진적인 지배구조로 평가받는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서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차단하고 자회사, 손자회사의 소액주주를 보호하려면 지주사의 자회사 보유 지분율을 100%로 높여야 한다는 논리다.

◆‘현실주의자’ 김상조이에 반해 김 교수는 상대적으로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2006년부터 올 3월까지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기업들의 아픈 곳만 콕콕 집어 비판하면서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편으론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주요 대기업 오너, 경영진과 교류하면서 보수 쪽으로 한 클릭 이동했다는 평도 있다.

김 교수는 공정거래법에 대해서도 “여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현실에서 법률 개정에 매달리기보다 현행법을 일관성있게 적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재벌개혁 공약에서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재벌개혁에 집중하겠다”며 대상 범위를 좁힌 것도 김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300만개 넘는 기업을 모두 규제할 수는 없다”며 “대기업의 불공정·부당거래를 전담하는 조직을 강화해 우선적으로 4대 재벌을 지도·감독하면 나머지 기업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공정위 조사국 부활’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정위의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국은 국회 법 개정 없이 정부가 시행령만 고쳐도 조직할 수 있다.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이나 기존 순환출자전환 해소와 같은 법률 개정안에 대해서도 “실익이 크지 않다”며 소극적이다. 오히려 “상법 개정을 통해 소수 주주권을 확대하거나 국민연금 주주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오너 일가를 견제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우호적인 공정위, 우려하는 재계

교수 출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공정위 관료들은 “최정표, 김상조 교수 정도면 말이 통한다”며 내심 우호적이다. 일각에선 관료 특성상 정권 실세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도 있다. 조직의 권한과 역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기업들은 걱정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 영역이 다른 대기업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규제하는 제도는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 정책으로 애플, 도요타와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좌동욱/황정수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