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키신저, 코미 그리고 한반도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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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 키신저가 트럼프 과외교사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전략 멘토는 헨리 키신저다. 키신저는 백전 노장의 외교 전략가다. 1970년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직을 겸임하며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베트남전 종전(終戰)을 이끌어내는 등 미 외교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올해 95세로 백수(白壽·99세)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탄핵위기 트럼프, 어떤 카드 쓸지 몰라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키신저는 요즘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 만난다. ‘미국 패권주의자’인 그가 ‘외교 문외한’인 트럼프에게 강조하는 것은 ‘친(親)러시아-반(反)중국’ 프레임이다. 그는 미국의 패권을 위해 ‘힘의 균형 전략’을 쓴다. 40년 전엔 중국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했다. 이제는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약한 경쟁 상대와 손잡고 더 센 경쟁 상대를 무너뜨린 뒤 궁극적으로는 연합세력까지 제압한다는 패권 전략이다.키신저의 생각은 인사(人事)를 통해 트럼프 외교정책 곳곳에 스며든다. ‘미친 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해 초까지 캘리포니아의 의료기술업체 테라노스에서 키신저와 함께 이사로 일했다. 친러 성향의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키신저의 추천을 받아 입각했다.
이런 ‘키신저 키즈’들이 최근 추진하는 한반도 정책이 수상쩍다. 중국을 때리던 트럼프는 북핵 문제가 터지자 중국과 의기투합해 북한 압박에 나섰다. ‘선제 타격’을 언급하며 금세라도 들이닥칠 듯하다가 어느새 북한에 대화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는 북한에 손을 내미는 시점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부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종결 가능성 발언 등으로 ‘뒤통수’를 때렸다. 트럼프 취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다.키신저 외교도 예측 불허였다. 그는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의 주역이었다. 그 덕분에 노벨평화상도 탔다. 평화협정 당시 남베트남에 ‘북베트남이 침공하면 응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평화협정 2년 후 베트남은 공산화됐다. 키신저가 신경쓴 것은 미국 내 반전여론이었다.
트럼프는 외교를 ‘체스 게임’에 비유했다. 지난 3월 말 측근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그는 시리아 공습과 아프가니스탄 폭탄 투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반도엔 칼빈슨호 등을 보내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트럼프 지지율은 당선 후 처음으로 50%까지 치솟았다.
트럼프는 다시 위기국면이다. 지난 9일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경질한 뒤 탄핵론에 직면하고 있다. 10일 예정에 없는 키신저와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탄핵위기 국면의 불똥이 한반도로 튀는 것이다.백악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트럼프는 누구에게도 진 빚이 없다”며 “국면 전환을 위해 만만한 한반도 카드를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한반도 내 국지전을 불사하는 긴장 고조 시나리오도, ‘위대한 동맹’ 한국을 제치고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모두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둘 다 막 출범한 한국 새 정부에는 큰 부담이다. 트럼프와 키신저가 백악관에서 만나 함께 웃고 있는 보도 사진이 ‘전율’로 다가온 이유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