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인천공항 정규직화의 과유불급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문재인 정부 초기의 핵심 국정 아젠다는 일자리, 비정규직, 북핵으로 모아지는 듯하다. 취임 이후 보여준 행보에 비춰 그렇다. 비정규직 문제는 그중에서도 더욱 부각되는 양상이다. 대통령이 처음 찾은 현장이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은 인천공항이었다는 점, 인천공항공사가 내놓은 ‘연내 100% 정규직 전환’이라는 해법이 상승작용을 가져온 배경이다.

정규직과 대립적인 개념인 비정규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특징짓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노조와 무노조라는 특징이 더해지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중구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극심한 급여 격차다. 대기업-정규직-노조에 모두 속해 있는 근로자와 하나에도 못 끼는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100 대 38.6이다.디테일 결여한 통 큰 결정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 대립보다 생산·서비스의 패턴 변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경영효율화를 위한 아웃소싱이 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탓이다. 그러나 임금 격차가 더욱 심화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두드러졌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터다. 직전 정부의 노동 개혁도 출발점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이었다.

문 대통령의 첫 번째 방문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비정규직 근로자 1만명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통 큰 결정으로 보이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 달리지 않은 것만도 못한 폭주라는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기업의 인사·노무 관리는 복잡하면서도 민감하다. 상대가 있는 사안이어서 자칫하면 불협화음을 내기 십상이다. 근로자와 사측은 기업을 굴러가게 만드는 두 개의 축이 분명하다. 임금·단체협상이나 비정규직 전환처럼 근로자 신분에 민감한 경우 사정이 다르다. 대립·대결 구도가 펼쳐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만하게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협상 카드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카드를 모두 내보인 마당에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까.

필요한 것은 칼질 아닌 메스질

‘왜 지금껏 방치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 수밖에 없다. 전·현직 경영진과 해당 업무 담당자들은 직무유기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 정규직 근로자들은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노조인사·노무시스템은 한 방에 날아갔다. ‘평가를 통한 인센티브와 불이익’으로 공공기관들의 방만 경영 여부를 감시해 온 기획재정부는 허수아비 처지로 전락했다. 비정규직이 많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코레일 한국공항공사 등은 초비상이다. 인천공항 수준에 버금가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는 탓이다.인천국제공항은 각종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의 관문으로 발돋움 중이다. 경쟁하는 곳은 싱가포르 창이, 도쿄 하네다, 홍콩 첵랍콕, 상하이 푸둥 등 모두 만만치 않다. 전략·전술 없는 정규직 전환 이후 정규직 전환자가 노조를 세워 노사갈등을 빚는다면 이용객 불편과 국제경쟁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문제를 풀 때 첫 단추는 매우 중요하다. 켜켜이 쌓인 고질(痼疾)이라면 더욱 그렇다. 얽힌 실타래를 단칼에 베는 과감한 칼질이 아니라 세포조직까지 신경쓰는 섬세한 메스질이었어야 했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