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부도 찾아와 배우는 '귀농인 스승' 40년 버섯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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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네이버 FARM경기 여주시 강천면에서 버섯을 재배하는 이남주 자연아래버섯 대표(59)는 국내 대표적인 ‘버섯 명인’ 중 한 사람입니다. 1979년 버섯 농사를 시작한 그는 새로운 재배법을 꾸준히 개발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주변에 전수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명인’으로 뽑혔습니다. 대형마트 등에 버섯 납품을 하던 3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15억~20억 원 수준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버섯 재배를 통해 부를 일군 그는 2015년부터 버섯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버섯 납품을 두고 다른 농가들과 경쟁하는 대신 젊은 농민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라디오 방송을 통해 버섯 재배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다른 이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지난달 20일 찾은 이 대표의 농장은 작은 ‘버섯 왕국’ 같았습니다. 3만3000여㎡(약 1만평)의 땅에 연면적(대지면적 대비 건물 바닥면적의 합) 4100여㎡(약 1200평) 규모의 실내 버섯 생산시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농장 한편에는 버섯 재배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장, 전시·판매장, 음식점, 연구소 등도 마련돼 있습니다.◆라디오 방송이 바꾼 인생
이 대표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습니다. 그는 “농사 지을 땅도 없이 생활고에 시달려서 내가 직접 농사를 짓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남 마산(창원시로 통합)에 있던 육영재단의 직업학교에 들어갑니다. 기술을 배워 홀어머니와 세 명의 누나·여동생을 보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1년여 동안 직업훈련을 받고 2개의 자격증을 딴 뒤 바로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공장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3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옵니다.
▶버섯 농사를 결심하겐 된 계기가 뭔가요.
“여주 고향집에서 일자리를 구하면서 지내다가 우연히 라디오 뉴스를 하나를 들었어요. 이계진 아나운서가 진행한 뉴스였는데 버섯을 키워 많은 소득을 올리는 농장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넓은 땅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 뉴스에 나온 농장이 어딘지 물어봤더니 ‘대한버섯연구소’라는 농장이라면서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더군요.”▶그 농장에서 버섯 재배기술을 배운 건가요.
“거기선 딱 하루만 재배기술을 배웠어요. 종이 한 장에 버섯을 어떻게 키우는지 정리해서 갖고 나온 게 전부였죠. 1979년 고향집 마당에 52㎡(약 16평) 규모 재배하우스 한 동을 지은 게 버섯 농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준 35만 원이 종잣돈이 됐습니다. ”
◆느타리버섯 신(新)재배법으로 급성장그는 버섯 관련 자료를 닥치는대로 구해 읽으며 재배기술을 독학했습니다. 1981년 영농 후계자 자금을 지원받아 재배 시설을 넓혀나갑니다.
이 대표가 ‘버섯 명인’ 반열에 오르게 된 건 직업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버섯 재배에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직접 개발해 특허를 획득하고 국내외 신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춰기 때문입니다. 요즘 느타리버섯을 비교적 싼 가격에 쉽게 먹을 수 있게 된 데는 이 대표의 공도 적지 않습니다.
그는 1988년 느타리버섯을 비닐봉지에 넣어 키우는 ‘느타리버섯 봉지재배법’을 실용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비닐봉지 안에서 버섯을 키우는 게 대수롭지 않은 기술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국내에선 일본에서 들여온 봉지재배법을 제대로 실용화한 곳이 없었습니다. 버섯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담고 있는 톱밥, 쌀겨, 물의 배합비율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새로운 재배기술은 어떻게 개발했나요.
“처음엔 봉지 안에 배지(培地·식물에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있는 물질)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일본 신문에서 농민이 버섯과 배지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대략적인 양과 크기를 추정했을 정도니까요. 각종 자료를 구해서 읽고 농촌진흥청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배합비율을 알아낼 수 있었죠.”
▶봉지재배법의 장점은 뭔가요.
“우선 생산과정을 표준화할 수 있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요.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키운 버섯보다 갓(버섯 머리 부분)이 크고 대(줄기 부분)가 굵고 짧은, 자연상태에 가까운 버섯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부자 농부 키워내는 게 꿈
새로운 재배법을 실용화하는 데 성공하고 버섯을 대량 재배하는 데 필요한 기계를 개발해 특허도 받았지만 농장이 거두는 수익이 당장 올라가지는 않았습니다. 이 대표가 봉지재배법으로 키운 버섯에 대해 도매시장 상인들은 모양이 이상하다며 낮은 가격을 매겼습니다. 당시엔 배송이 편하도록 갓이 작고 대는 길고 가는 버섯을 상인들이 선호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이 대표가 키운 버섯을 찾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매출도 지속적으로 늘어 이른바 부농 수준에 올라섭니다.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된 2013년엔 연매출이 17억원에 달했습니다.
그는 2015년 어려운 결정을 합니다. 버섯을 납품해오던 대형마트, 생협과의 거래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죠. 버섯 농사에 문제가 생겨서 그랬던 게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였습니다. 이 대표는 그해부터 후배 농민 교육에 집중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국내 첫 농산업 현장실습교육장(WPL)인 그의 농장에선 매년 120여 명이 버섯 재배교육을 받습니다. 12일 동안 10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는 강도 높은 과정입니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20일 스리랑카 사바라가무와주(州) 주지사와 공무원 일행이 농장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미국, 불가리아, 뉴질랜드, 아랍에미리트, 가나 등의 농민들이 이 이곳을 찾아와 버섯 재배 기술을 배워갔습니다.
▶매출이 많이 줄었겠습니다.
“2015년부터 홈페이지와 현장 판매를 통해서만 버섯을 팔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 매출이 5억 원이니까 몇 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되죠. 그래도 즐겁습니다. 더 이상 현장에서 마트 납품을 두고 경쟁하기보단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한 거니까요.”
▶교육 프로그램에선 어떤 걸 배울 수 있나요.
“교육생들은 100시간 동안 버섯 종류별로 재배법에 대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습니다. 평일반이 있고 금토일에만 교육을 듣는 주말반이 있어요. 한 기수당 5-6명 정도가 교육을 받습니다. 일반인 교육비는 150만 원 수준인데 정부에서 70%를 보조해줍니다. 학생들은 교육기간이 짧고 교육비도 절반 수준입니다.”
이 대표에게 버섯 재배기술을 배워 농촌 정착에 성공한 여러 귀농인들은 이 대표를 은인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이 대표가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나눠준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버섯이 농민과 예비 귀농인들에게 좋은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 작물이 될 거라고 추천합니다.“100세 시대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장수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점점 더 건강에 좋은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인구증가로 식량문제가 심각해지면 해외에서도 버섯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거고요. 외국에서도 이곳 여주까지 찾아와 어떻게 하면 버섯을 잘 키울 수 있을지 배워가고 있으니까요.”
여주=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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