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영국·독일 이어 프랑스·이탈리아도 "노동유연성 없는 일자리 확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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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노동개혁 경쟁유럽 국가들의 노동개혁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10% 이상의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1순위 과제로 노동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모두가 자국 내 일자리를 지켜내고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개혁 정책은 최우선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맞춰져 있다. 앞서 노동개혁에 성공한 영국과 독일이 롤모델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일자리 나누기'서 '만들기'로 정책 선회
고용률 70% 목표…이탈리아·스페인도 근로형태 다양화
노동개혁은 기득권과의 싸움…올바른 방향 설정이 첫 단추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영국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부터, 독일은 2000년대 초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때 ‘하르츠 개혁’을 통해 해고 절차 간소화와 고용 형태 다양화 등을 적극 추진했고, 지금은 유럽 경제의 모범생으로 질주하고 있다.유럽 국가들의 이런 모습은 ‘일자리 창출’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시사하는 게 많다. 오랫동안 복지와 고용 안정을 강조해온 유럽 국가들이 왜, 어떻게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신임 대통령은 최근 유럽 각국의 노동개혁 경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그는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저성장과 고실업을 ‘프랑스병(病)’으로 지목하고 강력한 개혁으로 고치겠다고 밝혔다. 사회당 정부 시절인 2014년 경제장관을 맡았을 때 주당 35시간 근로제의 근간을 뒤흔든 경제개혁법(일명 ‘마크롱법’) 입법을 주도한 개혁파다.
주 35시간 근로제는 2000년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일자리를 나눠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도입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는 없었다. 고용 유연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도입한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들의 부담만 늘렸고, 오히려 실업률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일자리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이 커진 배경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프랑스뿐 아니라 재정 위기를 맞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도 2010년 이후 노동시장 유연성 및 역동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해고 조건 완화 및 파견근로·시간제근로 등 근로형태 다양화는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정책들이다. 이탈리아는 노동계 반대를 무릅쓰고 기간제근로와 파견근로 등에 대한 사용사유 명시 의무를 없애는 방안을 내놨다.
실패한 '주당 35시간 근로제'
유럽에서는 한국과 달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핵심 이슈가 아니다. 정규직 전환 때 일부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펴는 정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보다 역내 다른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고용 유연성 확보가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어떻게든 고용에 따른 기업 부담을 낮춰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해고 요건 간소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종업원 10명 이하 소기업은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명확하게 감소했다면 경영상 해고가 가능하도록 하고, 300명 이상 대기업은 1년 매출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기준을 재정립했다.영국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한 이후 우려와 달리 일자리 시장에서 호황이 거듭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은 꾸준한 경제성장과 함께 고용도 늘어나고 있다. 몇몇 다국적기업이 영국 근무 인력을 다른 유럽연합(EU) 지역으로 전환 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별 영향이 없는 상태다. 고용률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영국의 고용률(15~64세 기준)은 73.5%로 독일(74.7%)과 함께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뒤늦게 노동개혁에 나선 프랑스 고용률은 64.2%, 이탈리아는 57.3%에 불과하다.
영국 고용시장의 호황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장 유연성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은 1980년대 대처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이뤄진 노동개혁에 힘입어 경제 규모가 큰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해고가 쉬운 나라로 꼽힌다. UBS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장 유연성에서 영국은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 미국에 이은 세계 5위다.
그럼에도 영국은 추가적인 노동개혁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2015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강성 노조의 기득권을 없애고 무분별한 파업을 억제하는 법안을 마련하며 대처 총리 개혁을 이어받았다. 새 법안은 파업 찬반투표에 최소 투표율 요건 50%를 신설했을 뿐 아니라 핵심 공공사업장엔 찬성률이 전체 조합원의 40%를 넘도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극소수의 투표 참여로 파업이 이뤄지는 관행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리사 메이 총리 주도의 브렉시트 협상이 마무리되면 EU 통제에서 벗어나는 영국의 노동정책은 더 친(親)기업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의 일자리 경쟁력을 추격하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선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다.독일과 영국의 고용률 '고공비행'
독일의 노동개혁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독일은 이른바 ‘생산입지 논쟁’을 통해 노사가 ‘윈윈’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 유연성을 강화한 독일에서는 한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지 않으면 생산시설 해외 이전과 일자리 감소를 막기 어렵다는 사회적 논의가 확산됐다. 이를 계기로 벤츠와 폭스바겐, 지멘스 등은 임금 인상 없는 근로 연장을 조건으로 고용을 보장하는 합의가 이어졌다.
유연성과 안정성은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두 축으로 꼽힌다. 노동 유연성이 기업으로 하여금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면, 노동 안정성은 근로자의 실직 위험 등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노동 유연성 확대가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반드시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경직되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노동시장에서는 채용을 꺼리고, 이는 전체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 고용 보호를 더 중시하던 유럽 국가들은 명백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가 간 경제장벽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노동 유연성이 떨어지면 일자리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사례를 숱하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전세계는 일자리 전쟁중세계는 지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글로벌 일자리 확보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제대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OECD에 따르면 독일 노동개혁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까지 짧게 잡아도 3~4년 이상이 걸렸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보듯 기득권 세력의 반발 등으로 정치적 부담도 크다. 방향을 확실히 정하고 정부 의지가 확고해도 성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게 노동개혁이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