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개혁, 과거의 실패에서 배워야

시장원리 역행하는 개혁은 성공 어려워
소득주도 성장도 재정부담만 늘릴 우려
여러 개혁의제 쫓기듯 실행은 조심해야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뛰어넘는 개혁을 다짐하며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혁명보다도 어렵다는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과거 정부의 실패에서도 교훈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가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고 했지만 힘만 있으면 개혁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과거 정부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 능력을 과신해 밀어붙이지 말라는 것이다. 시장 원리나 사회적 흐름과 역행하는 개혁 조치는 성공하기 어렵다. 물살을 거슬러 수영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김영삼 정부는 권위주의 시절의 각종 권력기관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이에 의존해 개혁을 추진한 탓에 ‘개혁권위주의’라고 불릴 정도였지만,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동력을 잃었다. 개혁이 경제와 사회 분야로 확대되면서 개혁에 대한 저항이 확산된 탓이다. 중요한 것은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다. 효과가 불확실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큰 의제는 피해야 한다.또 하나 유념할 것은 외과적 수술로 환부만 도려내면 되는, 그런 단순한 개혁 의제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문제도 복잡하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문제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손을 대면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마침내는 의도하지 않은 엄청난 나비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좋은 예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실패 사례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정책이다. 서울 강남과 신도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는 신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기대한 효과를 거뒀지만 강남에서는 집값을 크게 상승시키는 전혀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전혀 뜻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진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본 탓이 크다. 강남의 주택은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하는 경제재(economic goods)를 넘어 지위재(status goods)의 특성도 있었지만 이 점을 간과하고 중과세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세금 폭탄을 맞은 강남의 주택 소유자들은 세금 증가분을 기왕의 가격에 얹기 시작했고, 값이 올라 아무나 이를 넘보기 어렵게 되자 오히려 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값이 오를수록 수요가 몰리는 기현상 아닌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새 정부가 최우선 정책 과제로 밀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도 이처럼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공공 부문 주도로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늘고, 이것이 다시 생산의 확대를 가져와 경제도 성장할 것이라는 게 소득주도성장론이 상정하는 선순환 구조다. 얼핏 분배와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묘책으로 보이지만 중간의 한 단계만 삐끗해도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채 재정 부담만 가중될 공산이 크다. 예컨대 소득이 늘어도 성장을 견인할 만큼 소비가 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통계를 보면 가계평균지출 증가율은 가계평균소득 증가율보다 항상 낮았다. 최근 들어 폭증세를 보이는 해외 직구(직접 구매) 증가도 소득 증가가 곧바로 국내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요인이 될 수 있다.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증대도 마찬가지다. 자칫하면 한계기업들이 무더기로 무너지면서 일자리가 줄어 오히려 소득이 감소할 수도 있다. 얼마 동안은 정치적 압력을 통해 정규직 일자리도 늘리고 최저임금도 인상할 수 있겠지만 오래갈 수는 없다. 이처럼 의도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질 여지가 있는 만큼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혹시 간과한 것은 없는지 살피는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개혁 의제를 실행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여러 개혁이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많은 개혁 의제를 거의 동시에 실행하면서 각기 다른 이유로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사실상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