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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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상황판보다 '규제 상황판' 보고 싶다취임 보름여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과제 수행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지시한 데 이어 국정교과서 폐지,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4대강 사업 정책감사 등 선거 공약을 중심으로 굵직한 현안을 직접 챙기는 모습이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 고용할당제 될 수도
벤처기업 인증, 정부 아닌 시장에 맡겨야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에 대해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형식이나 절차가 법적 근거가 없거나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국정 현안에 대해서 국민 눈에 쏙쏙 들어오게 전달하려는 의미”라며 정부 진용이 갖춰지면 업무지시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야권의 지적에도 일리는 있다. 다만 집권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 측 입장 역시 수긍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형식이나 절차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다. 어떤 내용의 국정을 펼치느냐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 중에는 의욕 과잉 논란을 빚는 것들이 적지 않다. 새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일자리 정책이 대표적 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대로 그제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공기업은 물론 민간 기업들의 일자리 현황도 포함시켰다. 문 대통령은 “재벌 그룹의 일자리 동향을 기업별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의 추이가 드러나게끔 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은 분야는 비정규직이 어떻게 개선되는지를 월 단위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일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직접 상황판을 설치한 데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한 대통령이 매일 일자리 상황판을 챙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공무원들이 상황판 속 일자리 지표의 숫자에 매달려 큰 흐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어제 업무보고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민간 기업의 정부 조달사업 참여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그렇다. 압박을 느낀 기업들이 일자리의 질적 향상보다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 숫자 줄이기에 내몰릴 공산이 크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비정규직 해법은 결국 ‘고용 할당제’처럼 운영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반(半)강제적으로 떠안는 식이다. 사실상의 고용 할당제가 ‘반짝 일자리’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문 대통령은 ‘일자리가 마련된 성장동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경제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민주화와 분배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빗발치는 요즘이다. 하지만 기업의 자율과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속가능 성장도 어렵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좋은 일자리는 일자리 상황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기업이 만든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이 활발한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자리 상황판보다 규제 상황판을 보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새 정부는 사회적 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벤처기업인증위원회를 설치해 벤처 인증을 맡게 하겠다고도 한다. 모두 시장 자율보다는 정부 개입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에 노조와 1 대 1 면담에 나섰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과 프랑스 새 정부의 행보를 보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