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기하학의 변주…모렐레 이색 추상미학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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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수아 모렐레, 갤러리 현대서 1주기 추모전열다섯 살 소년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화가인 장드니 마이야르의 아틀리에에서 처음 미술과 마주했다. 젊은 시절, 왠지 클래식하고 조화로운 구성주의 화풍이 싫증 났다. 1950년대부터 지극히 단순한 것, 거의 무(無)와 다름없는 추상미학에 마음이 끌렸다. 원의 지름을 의미하는 ‘파이(π)’와 같이 영원히 지속되는 숫자들 속에 존재하는 규칙을 절대 신봉하며 살았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질서와 비율, 균형의 미를 통해서만 사물의 생명력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3년에는 길쭉하고 딱딱한 네온등을 재료로 도발적인 작업을 시도했다. 캔버스, 붓, 이젤로 이뤄진 관습적 미술 행위를 끝장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년 5월 작고한 프랑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 프랑수아 모렐레(1926~2016·사진)의 이야기다.
전화번호·파이 숫자 활용 작품, 네온아트 등 소개
평생 기하학적 추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오직 ‘모렐레 표’ 미학을 창출한 그의 개인전이 지난 25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했다. 사후 1년 만에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회고전이다. 그동안 작업한 추상화를 비롯해 네온등 설치 작품, 오브제 작업 등 총 23점이 나와 그의 ‘추상세계 재조명’을 시도한다. 모렐레 작업의 진화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모렐레는 반세기 넘게 기하학적 추상을 바탕으로 개념미술과 키네틱아트, 네온아트의 장르를 넘나들며 일정 장소에 존재하기 위해 제작된 공간 특정적 미니멀아트 영역을 구축했다. 회화와 조각을 독학으로 배운 그는 1950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작고할 때까지 파리비엔날레(1963년), 독일 카셀도큐멘타(1964년), 퐁피두센터(2016) 등 총 456번의 전시회를 통해 독자적인 추상세계를 인정받았다. 2015년에는 루브르박물관 측으로부터 영구설치 작업을 의뢰받았다.
모렐레는 대부분의 기하학적 추상화가들이 어떤 엄격한 규칙에 기반을 둬 작업했던 것과는 달리 ‘우연성’에 주목했다. 미리 계산하지 않고 수직, 수평, 혹은 다양한 각도로 겹치는 선들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형태가 모렐레 작업의 기본이다.1960년 제작한 가로세로 1m 크기 화면에 정사각형 4만 개를 이어붙인 회화 작업은 우연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전화번호부의 무수한 숫자를 이어붙여 면·선·사각형의 패턴을 만들고, 여기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채색했다. 관람객이 작품 속에서 원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해주고 싶어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규칙이나 리듬감을 살려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파이(π)’ 시리즈 역시 숫자의 규칙성을 바탕으로 태어난 회화 작품이다. 원과 직선이 화면의 어느 지점에 멈출지라도 관람객의 상상력은 무한히 뻗어나가게 한다는 작가의 작업 의도가 흥미롭다.
모렐레 작업의 또 다른 축은 네온이다. 1960년대 처음 네온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생전에 “내가 좋아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재료로서 시간과 리듬 같은 요소를 포함할 수 있게 해줬다”고 말하곤 했다.2001년 작 ‘뾰족한 π네온리 2번, 1=3°’는 1m 길이의 하얀색 네온관 20개를 불규칙해 보이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한 대작이다. 파이의 숫자(3.141592…)에 인위적으로 부여한 ‘1=3°’ 규칙을 적용해 각도를 만들어낸 뒤 해당 네온등을 기하학적으로 연결했다. 작품에 ‘뾰족한, 네온리(Neon+only)’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람객은 명료하지 않은 구도 속에서 저것이 과연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작품을 ‘보는 행위’와 ‘보는 과정’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까닭이다.
2014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3D’ 연작도 눈길을 끈다. 서로 다른 각도로 배열된 세 개의 줄표(dash)를 이용해 마치 입체처럼 보이는 네온아트다.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키네틱아트, 옵아트, 미니멀리즘 등 그의 작업 전반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게 도형태 갤러리 현대 사장의 설명이다.
“시각 예술이란 상당 부분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가 작품 속에서 원하는 것, 달리 말해 관람객이 그들 스스로 가져오는 것을 발견하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 모렐레. 그는 자신이 그렇게 바랐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미학적 시스템을 찾으려 노력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시는 7월9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