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장관 후보 발목잡지만…위장전입, 쉬워도 너무 쉽네

"내집 주소에 낯선 이가…"
본인 신분증만으로 전입신고, 사후실사가 원칙…적발 힘들어

3년이하 징역·1000만원 이하 벌금
유학생 등 일시적 해외체류자 12월부터 행정 관리주소로 신고
서울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철거를 앞두고 이주비 대출을 받으려고 하다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이 전입신고돼 있기 때문에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통보였다. 전입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전입신고는 신고자가 작성한 서류를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A씨는 “주민센터에 위장전입자 말소 신청을 했지만 2~3주가량 걸린다더라”며 답답해했다.

◆너무나 쉬운 위장전입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등 주요 공직 후보자들이 시비에 휘말리며 위장전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실거주지가 아닌 곳에 전입신고하는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제37조 위반사항이다. 1990년 6월 서울 중계동 재개발 아파트에 투기할 목적으로 위장전입한 이들이 처음 구속되며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보통은 학군 문제나 부동산 투기 등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공무원 준비생이 해당 지역 공채 시험에 원서를 내기 위해 위장전입하거나 채권 추심, 경찰 수배 등을 피하는 용도로 악용되기도 한다.

A씨 같은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본인 신분증만 있으면 전입신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정일자를 받을 때는 전월세 계약서 등 증빙서류가 필요하다. 하지만 재산권 주장과 무관한 전입신고는 요식적인 신고절차만 간단히 거치면 된다. 한 주민센터 담당자는 “민원인이 쓴 서류를 토대로 전입신고를 처리하고 사후에 실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실거주 여부를 까다롭게 확인할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위장전입은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적발 자체가 쉽지 않아 처벌받는 이도 드물다. 실거주자가 전입세대열람원을 떼어 보지 않는 한 본인 주소가 위장전입에 사용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으로 고발당한 사람은 △2014년 138명 △2015년 209명 △2016년 195명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주민등록은 적절한 행정처리가 목적이기 때문에 과도한 벌칙부과보다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실거주’라 우기면 어쩌지 못해”

문제는 현장실사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주민센터는 전입신고 15일 안에 실거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집을 비우는 이들이 많은 대도시에서 일일이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전학생이 오면 교사가 주소지로 찾아가 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아닐 경우 원주소 학교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부모가 한 달가량 원룸을 얻어 테이블 위에 아이 이름이 크게 적힌 문제집을 올려 두고 실거주라고 우긴 경우도 있다”며 “사람이 살지 않아 냉기만 도는 방이지만 학생의 미래와 학부모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위장전입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유학생, 해외주재원 등 일시적인 해외체류자의 경우 국내 거주지가 불분명하면 주민등록이 말소된다. 이때는 도리어 행정기관에서 위장전입을 권유하기도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위장전입 사유로 ‘연구교수로 해외에 갔을 때 우편물을 받기 위해 부모님 집으로 전입신고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자부는 주민등록법을 개정해 오는 12월부터 적용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해외체류자가 부모 집 등에 전입하는 것은 위장전입으로 처리하지 않고, 들어갈 국내 주소지가 없다면 관할 읍·면·동사무소 주소를 행정상 관리주소로 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