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리·장관 분단위 일정 공개, 전시행정 부작용 걱정된다

문재인 정부가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의 일정을 분(分)단위로 상세하게 공개할 방침이라고 한다. 행정자치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부 주요인사 일정 공개 개선방안’을 마련해 부처 의견수렴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공약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설명이지만, 또 하나의 ‘책상머리 정책’이 나왔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일정 공개를 통해 행정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예상되는 역효과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지침을 따라야 하는 각 부처로서는 회의, 행사 참석, 현장 방문 등이 모두 공개되는 것이어서 총리나 장관이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느냐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다. 결국 비서실은 분단위 일정을 짜느라 거의 매일같이 부산을 떨 것이고, 그로 인해 온갖 전시 행정이 폭주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문제는 부처가 제대로 된 정책으로 승부할 생각은 않고 허구한 날 총리나 장관 주재 회의, 행사, 현장 방문 등으로 시간을 다 보내면 그 폐해가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툭하면 TV에 나오는 고위층의 서민 행보라는 전통시장 방문이 그 단적인 사례다. 오죽하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경호원을 고생시키는 ‘보여주기 쇼’는 하기 싫다고 말했겠나. 그뿐이 아니다. 총리나 장관 행사에 분단위로 동원돼야 할 기업인이나 산하기관도 죽을 맛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가 오라 가라 하는 통에 일을 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 넘쳐난다.

혁파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규제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리나 장관의 분단위 일정이 기업활동이나 서민생활 등에 방해가 되면 그 또한 규제나 다름없다. 일을 잘한다는 것과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