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오페라 속 축배의 노래

축배에는 즐거움뿐 아니라 열정도 담겨
함께하는 의미 새길 때 술향기 오래 갈 것

이경재 < 오페라 연출가 >
오페라 작품에서는 잔을 드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서는 파우스트 박사가 독배를 들기도 하고,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서는 예수의 보혈이 담긴 성배 의식을 거행한다. 하지만 잔을 든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술이 그 안에 담기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함께 술을 들며 노래하는 장면 역시 오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이탈리아어로 브린디시(Brindisi·축배)라고 하며 보통은 독창자와 함께 합창단 등의 사람들이 술을 나누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축배의 노래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장면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춘희’의 1막에 나오는 “Libamo ne lieti calici”로 시작하는 ‘넘치는 술잔을 듭시다’이다. 가전 제품 광고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 방송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는 이 노래는 남녀 독창자가 먼저 한 번씩 멜로디를 나눠 부르고 합창단과 함께 흥겹고 화려하게 잔을 들어 끝을 맺는 곡이다. 언뜻 보면 이름 그대로 축배의 노래이니 잔을 들어 흥겹게 축하하는 것 같지만 오페라의 전후 사정을 보면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주인공 알프레도는 고위 귀족들의 사교파티에 어렵게 참석할 수 있었다. 젊고 아직은 고위층들과 어울리기에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티의 주선자이자 파리의 최고 미인 비올레타를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이 모임에 오게 된 것이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 남자를 보고 사람들이 비올레타 앞에서 노래를 한 곡조 뽑아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주눅이 들어 있던 알프레도는 사모하는 여인 비올레타가 보고 있기 때문에 용기를 낸다. 그러자 비올레타도 그 노래를 듣고 화답하며 일동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는 노래를 부르며 잔을 든다. 이 노래를 통해 알프레도는 쾌락보다는 진정한 사랑이 오리라는 믿음을 말한다. 축배의 노래 시작은 즐겁게 축하하는 것이 아닌 한 남자의 사랑을 향한 목적이고 용기였다.

베르디보다 이후에 출생한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작품에서도 축배의 노래가 나온다. 이 작품은 작품 중간에 삽입된 서정적 멜로디의 간주곡으로도 유명한데, 그 간주곡이 끝나면 시칠리아의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남자 주인공 투릿두가 권하는 술을 마시며 모두 즐겁게 오후를 즐기고 있다. 부활절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마을 광장에서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역시 술잔을 드는 이유가 있다. 남자 주인공이 은밀히 사귀고 있는 로라라는 애인에게 ‘나 이런 남자야’라고 은근히 과시하려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축배의 노래는 이 외에도 많이 있다. 슈트라우스의 ‘박쥐’에서도 축배의 노래를,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서도 결혼식을 축하하는 축배를 들며 노래를 부른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축배를 들었다. 축배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아련한데 실은 무엇을 위해 축배를 들었는지, 흘렸던 잔 속에 어떤 의미와 의지를 담고 ‘건배, 마시자’를 외쳤는지는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잔을 나눌 때마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축배를 들 때에 유의미한 잔을 채워 함께 나누는 웃음과 즐거움이 무엇을 위해 피어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면 좋겠다. 그 술의 향이 진하고 오래도록 남을 수 있게 말이다.

이경재 < 오페라 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