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공화국'의 부활…문재인 정부, 17개 더 늘린다

기존 위원회도 강화하기로…전문가들 "옥상옥 될 우려"

위원회 554개 중 106개는 1년간 회의 '0'

이낙연 총리도 고충 토로
"60개는 총리가 위원장, 1년에 두 번씩만 나가도…"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각종 정부위원회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한 데 이어 이달 9일에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교육위원회와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위원회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집에서 신설하겠다고 한 위원회만 17개에 달한다. 국정농단을 조사할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부패 방지를 위한 국가청렴위원회, 개헌 논의를 이끌 개헌특별위원회, 범(汎)정부 을(乙) 보호기구인 을지로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더해 기존 위원회도 상당수 강화하기로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미 “유명무실한 기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강력한 컨트롤타워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또 “환경부 산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총리실 산하 녹색성장위원회를 통합해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위원회로 격상하겠다”고 했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위원회 신설·강화 방침이 잇따르면서 관가에서는 “노무현 정부 이후 10년 만에 ‘위원회 공화국’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12일 “위원회가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지만 거꾸로 옥상옥(屋上屋)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휴면계좌처럼 제대로 가동 안 되는 위원회도 많다”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높일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위원회는 그동안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김대중 정부 말(2002년) 364개에서 노무현 정부 말(2008년 2월) 579개로 60%가량 늘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대대적 정비를 거치면서 2010년 한때 431개까지 줄었지만 이후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554개가 활동 중이다.

문제는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많다는 점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전체 554개 위원회 중 20%에 육박하는 106개 위원회가 지난 1년간(2015년 7월~2016년 6월)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분기에 한 번 이상 회의를 한 위원회(246개)도 절반이 채 안됐다. 국정기획위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만 해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당초 보건복지부 소속이던 이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끌어올렸지만 지난해 회의 건수는 본회의 기준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나마 한 번은 위원들이 직접 출석하지 않는 서면회의였다. 당연히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고 성과도 미미했다.

위원회가 너무 많다 보니 위원장이 직접 챙기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내정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총리가 위원장을 겸하는 위원회가 60개가량 된다”며 “그걸 1년에 두 번씩만 회의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위원회 구조조정 필요성을 내비친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이달 초 국민대통합위원회, 청년위원회, 문화융성위원회, 통일준비위원회, 정부3.0추진위원회 등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구성한 5개 위원회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다 과감히 메스를 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옥상옥 논란이 되는 위원회도 있다. 을지로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을(乙)’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꾸린 이 위원회를 집권 후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기구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각 부처에 대한 조사지휘권을 줄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물론 민주당 내에서조차 “이미 공정위 등 기존 정부 부처가 있는데 비슷한 기능을 가진 위원회를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관가에선 ‘위원회 시대’의 부활에 대해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곳만 늘어날 것”이란 우려와 “1~2개 부처에서 할 수 없는 대형 국책과제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