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오스트리아 후기 낭만주의의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인 안톤 브루크너에겐 흥미롭게도 ‘교향곡 0번’이란 게 있다. 숫자로 봤을 때 1번 교향곡보다 이른 시기에 작곡에 착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악보를 본 한 지휘자가 의구심을 표시하자 브루크너는 발표를 미루고 한쪽에 처박아 뒀다. 그러고는 수년 뒤인 1869년에야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숨겨뒀다가 죽기 1년 전에야 교향곡 리스트에 없어야 할 졸작이라는 의미로 ‘0번’이라 했다고 한다.이 곡은 특이한 번호 때문에 관심을 끌곤 한다. 아마 1번으로 발표됐다면 별 주목을 못 받았을 것이다. 1번이나 2번 교향곡 정도의 수준은 되고, 브루크너의 일반적 특징이 거의 구현돼 있기는 하다. 한편 이보다 앞선 습작 교향곡(1863년)을 ‘00번’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곡은 무시해도 좋다. 그저 훈련을 위한 곡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