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국부(國父)', '인간 박정희'에 대한 세련된 풍자

한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연극 ‘국부(國父)’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 기원을 찾아간다. “박 전 대통령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관객이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실마리를 풀어놓는다.

박 전 대통령 집권기를 직접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첫 번째 실마리다. ‘배고픔을 해결해준 구세주’ ‘정 많고 눈물 많아 선글라스를 낀 인간적인 사람’ ‘문화를 죽이고 예술을 검열한 사람’ 등의 평가가 쏟아진다. 두 번째 실마리는 박 전 대통령의 일대기다. 그의 탄생부터 교사생활, 군인이 됐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사형 위기를 겪은 이야기, 육영수 여사와의 러브스토리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연극은 찬미와 풍자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박 전 대통령을 우러르는 남성 역은 여배우가, 여성 역은 남자배우가 연기한다. 관객과 배우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며 비판적 거리를 확보한다. 박 전 대통령 역할을 하는 배우가 계속 바뀌는 것도 같은 목적의 장치로 읽힌다.

백미는 구약성경 출애굽기를 빌려오는 제3장 ‘신화’다.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애굽을 탈출하는 ‘모세’를 가난에 허덕이는 국민을 이끌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 ‘정희’로 치환한다. 오랜 광야생활에 지쳐 반란을 일으킨 백성에게 신이 전염병을 내릴 때 극중 ‘정희’는 말한다. “신이 나를 지도자로 정해 뜻을 펼치시는데 그를 무시했으니 화가 나신 겁니다. 광야에서 굶어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들 신을 거역해 벌을 받은 겁니다.”

관객은 배고픔에선 벗어났지만 자유와 생명에 상처를 입은 개발독재시대의 그늘에 직면한다. 연극은 그가 숨을 거두던 순간을 수차례 반복하며 그의 ‘초인’적인 면모도 강조한다.극은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하지도 조롱하지도 않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찬가로도, 세련된 풍자로도 읽힐 수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맹목적인 찬미보다 설득력있는 찬가이자 노골적인 비판보다 세련된 풍자극으로 평가할 만하다.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18일까지, 3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