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감사원의 '코드 감사' 논란

정인설 정치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감사원 본청. 감사원이 국회 요청으로 지난 1월 시작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기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둘러싼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과연 누가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였다.

그동안 감사원은 주로 고위 공무원인 실·국장급 이상을 문책해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감사원이 징계를 요구한 문체부 직원 19명 중 12명이 과장급 이하였다. 공무원이 된 지 10년도 안 된 사무관 이하 실무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말단 직원이 윗선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상급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한국 공직사회의 특성을 감안해 달라는 항변이었다.감사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신민철 감사원 제2사무차장은 “부당한 지시에 대해 법령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이행한 관련자에게 징계를 요구함으로써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랙리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사안들은 청와대가 가볍게 얘기하거나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혼자 지시했는데 담당자들이 법률 검토도 안 해보고 일방적으로 이행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의 행보를 두고 여러 뒷말이 나왔다. 감사원은 당초 2월 말 감사를 끝내기로 했다가 몇 차례 연기하며 5개월을 끌었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한 달 뒤 블랙리스트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해 공직에서 물러난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이 문체부 2차관으로 임명된 나흘 뒤였다. 감사원 의도와 무관하게 새 정부의 가려운 곳 중 하나인 ‘문체부의 인적 청산’을 도와준 셈이다.

감사원은 “살펴볼 쟁점이 너무 많았고 관련자들의 해명을 충분히 듣기 위해 감사가 늦어졌을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설명한다. 이런 해명을 한 감사원은 14일 4대강 사업 감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벌써 네 번째인 4대강 감사가 어떻게 흐를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정인설 정치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