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우성건영] "입지 좋은 수도권 택지지구 공략…호텔 등 사업 다각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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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오병환 우성건영 회장으레 연상되는 기업의 회장 집무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지하벙커의 ‘작전상황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법했다. 벽면엔 대형 걸개 지도와 시공현장에서 그날그날 올라온 사진들이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할인마트로 번 돈이 사업 밑천
"유통분야서 잔뼈 굵은 만큼 장사 잘되는 땅 찾는 건 자신 있죠"
회장실은'지하벙커 작전상황실'
출근하자마자 지도 보며 사업 구상"수시로 달라지는 판세 읽어야죠"
모델하우스 소품 챙기는'오대리'
"디벨로퍼는 명품 만드는 장인 "인터넷 뒤져 조명등 직접 찾기도
“출근하자마자 먼저 지도를 20~30분간 들여다보며 사업 구상에 잠깁니다. 지도는 바둑판과 같습니다. 어떤 건물이 들어서면 새로운 포석이 놓이는 효과가 납니다. 주변 상권의 흐름이 바뀌기 때문이죠. 그러면 수(手)가 달라집니다. 입버릇처럼 수익형 부동산을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수시로 달라지는 판세를 읽다보면 상가나 오피스텔을 어떻게 개발하는 것이 최선일지 답을 얻게 됩니다.”오병환 우성건영 회장(52)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쉴 새 없이 사업 얘기를 이어나갔다. 마른 체격에, 전날 동탄2신도시의 오피스텔 부지 입찰가격을 검토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는 그는 다소 수척해 보였다. 늘 일에 몰두하는 워커홀릭(workaholic)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인상이었다.
‘쓰리잡(three job)’ 마다 않던 근성
오 회장은 슈퍼마켓 배달부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고교 졸업 후 군포에서 일하던 그는 트레일러를 몰기 위해 특수면허까지 땄다. 부지런히 일하며 약간의 종잣돈을 모은 그는 군포역 근처의 프랜차이즈 꼬치구이 전문점 ‘까투리’ 가맹점을 통해 첫 창업에 나섰다. 24세 때였다. 장사 수완이 좋았던 그는 140개 체인점 가운데 늘 매출 1등을 차지했다.장사에 재미를 붙인 그는 남아도는 낮 시간이 아까워 부업에 나섰다. 다세대 주택에 살던 그는 생활용품을 도매로 싸게 사들여 동네 주민에게 되파는 잡화점으로 꾸몄다. 손님이 뜸한 점심시간에는 자전거를 끌고 나가 국수 배달을 다녔다. 초저녁엔 다시 꼬치구이 집으로 출근했다. 이른바 ‘쓰리잡(three job)’이었다. 당시 그는 3~4년에 고작 5일 정도 쉴 정도로 악착같이 일했다. 175㎝의 키에 몸무게는 55㎏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렇게 벌어들인 그의 월수입은 700만~800만원에 달했다. 그 무렵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수성가한 청년 사업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물건을 팔다가 그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꿀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그때 집이 군포 당수동에 있는 언덕바지의 3층집이라 찾아오기가 쉬운 곳은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물건이 싸다고 얘길 듣고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며 아주머니들이 찾아오는 걸 보니, 이게 돈이 된다 싶었죠.”그는 곧바로 산본시장에서 대형 할인마트 사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천냥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땡처리 매장이었다.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업은 돈을 긁어모을 정도로 번창했다. 그는 “두세 달 일하면 작은 아파트 한 채 정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수도권 택지지구 땅 집중 공략
유통 사업을 통해 밑천을 모은 그가 우성건영을 설립한 건 2001년이다. 그때부터 상가와 오피스텔 분야만 집중했다. 그는 “느닷없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들겠다고 하니 주변의 걱정이 많았지만, 유통에서 잔뼈가 굵은 장사꾼인 만큼 장사가 잘될 만한 땅을 찾는 건 누구보다 자신있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주로 수도권 택지지구 땅을 공략했다. 안정적인 배후세대가 있고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오갈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밟는 땅이 가장 좋은 입지”라는 것이 땅을 보는 그의 잣대다.우성건영이라는 존재가 투자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3년 ‘르 보아’라는 브랜드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서울 마곡지구, 경기 동탄2신도시 등에 분양한 ‘르 보아’ 오피스텔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아 모두 팔려나갔다. 그것도 인접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분양에 들어간 대형 건설사들과의 정면승부에서 얻은 성과였다. 오 회장은 “가치는 높이되 적정 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을 고집했다”며 “기업의 이익만 극대화하고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없는 한탕주의식 개발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수익형부동산 전문 중견 건설기업으로 입지를 굳힌 우성건영은 건설사들의 시공 순위 평가 100위권 이내 진입도 코앞에 둔 드라마틱한 성장사를 쓰고 있다. 올해 총매출은 6000억~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아파트나 도로, 토목 공사실적도 없이 비주류 상품인 상가나 오피스텔만 개발해 이만한 회사로 키워낸다는 건 건설업계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모델하우스 소품까지 챙기는 꼼꼼한 성격
거친 디벨로퍼 업계에서 오 회장은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통한다. 모델하우스의 디스플레이도 직접 챙긴다. 현장에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공사비가 더 들어가더라도 재시공하라고 다그치는 일도 다반사다. 부동산 디벨로퍼는 작품을 만드는 장인(匠人)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직원들은 저를 너무 꼼꼼하다고 합니다만, 대충 지어놓고도 이익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면 저는 사업가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업가는 자기 자신도 도움이 되지만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가도록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잘 지을 수 있나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그러면서 오 회장은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보여줬다. 시공 중인 오피스텔을 방문해 구석구석 찍어놓은 사진이었다.“이 조명등 좀 보세요. 시공해 놓은 것이 맘에 들지 않아 직접 인터넷으로 1시간을 뒤지며 찾아낸 겁니다. 예전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우리 제품이 대기업에 비해 브랜드는 뒤지지만 막상 투자자들이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면 대부분 맘이 돌아섭니다. 대기업이 챙길 수 없는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쓰기 때문이죠.” 우성건영과 거래하는 시행사나 자재업체 관계자들이 그를 ‘오 대리’로 부른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