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대박 상품 라이스칩 개발한 평택 쌀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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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네이버 FARM한국 스타벅스(미국의 글로벌 1위 커피점)에는 해외의 다른 스타벅스에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시스템인 ‘사이렌 오더’(지금은 해외 몇몇 국가로 확대되긴 했으나 보편적이진 않다.), 태극기나 무궁화가 그려진 지역 맞춤형 텀블러, 그리고 한국의 농산물로 만든 메뉴다.
‘라이스칩’이라고 이름 붙인 뻥튀기부터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를 찐 ‘옥고감’ 메뉴, 사과와 배를 말려 만든 과자까지 꽤 많은 한국 농산물 메뉴가 팔린다. 얼마 전 이를 한데 모은 별별꾸러미가 판매하기도 했다.스타벅스의 이 농산물 제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다름아닌 경기 평택의 쌀농부다. 미듬영농조합법인을 이끌고 있는 전대경 대표(48)가 주인공이다. 1989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아버지를 도왔으니 농사 경력이 30년이 다돼간다.(전 대표는 농촌에서 경력 30년이면 ‘핏덩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농부보다는 성공한 농산물 가공식품 제조업자로 불린다. 농장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쌀농사보다는 가공식품에 대해 물어본다.
지난달 경기 평택시 오성면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전 대표는 “가공식품을 만들게 된게 어찌보면 북한 때문”이라고 자신의 얘기를 풀어놨다.
◆시장 밖에서 결정되는 쌀 가격...“안전장치가 필요하다”전 대표는 영농후계자였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의 일과는 새벽 5시, 논에서 시작됐다. “두시간 동안 논 정리한 후에 아침 먹고 학교에 갔어요.” 주말도 오롯이 농사에 바쳤다. 제대로 된 쌀을 많이 재배해 내다 파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
그가 쌀에서 뻥튀기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2007년부터다. 그해 미듬영농조합의 쌀 농사는 대실패였다.
미듬영농조합의 잘못은 없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정부가 북한에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국내 쌀 재고량이 크게 늘어난 때문이었다. 쌀 값은 폭락했다.
전 대표는 “쌀 가격이 정치 상황에 민감하다는 걸 실감했다”며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농사 외의 환경 변화가 생겼을 때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공식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제품이 된 ‘쌀과자 뽁뽁이’
그 무렵 스타벅스는 사회공헌활동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사치를 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인 ‘된장녀’라는 단어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스타벅스는 2007년 경기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우리 농산물로 만든 메뉴를 개발했다. 첫 시작은 떡이었다.
떡은 실패였다. 스타벅스는 냉동물류망이 없었다. 실온상태에서 떡을 배송해야했다. 품질유지기한은 단 하루. 남는 것은 버려야했고, 떡을 사간 소비자들은 상했다며 불만을 제기하기 일쑤였다. 다른 품목이 필요했다.당시 떡은 안성떡방이라는 업체가 납품하고 있었다. 전 대표는 “경기도와 스타벅스가 협약을 맺은 후 지속적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벅스가 계속 새로운 제품을 추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스타벅스가 좋아할만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투자했다.
그러던 중 스타벅스가 떡을 대체할 상품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됐다. 전 대표는 그 즉시 찜 케이크를 스타벅스 푸드 개발팀에 보냈다. 찜 케이크는 떡을 컵케이크처럼 만든 제품이다. 전 대표는 “스타벅스가 원래 팔고자했던 떡이면서도 식감은 커피와 어울리는 제품이어서 최종 후보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하지만 찜 케이크도 식감만 바뀌었을 뿐 냉동유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제품이었다. 스타벅스 푸드팀은 “이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회의는 길어졌다. 배고픈 팀원들은 찜 케이크를 배송한 상자 안에 있던 과자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전 대표가 배송 과정에서 찜 케이크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충전재’로 뽁뽁이 대신 넣어 보낸 쌀과자였다.
“의외로 괜찮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찜 케이크 회의는 쌀과자 회의로 바뀌었다. 전 대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타벅스가 원하는 스펙에 맞게 쌀과자를 고급화하고 라이스칩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2009년의 일이다.
“소비자들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거든요. 아메리카노엔 달콤한 디저트가 어울리잖아요. 그래서 라이스칩과 우리 농산물로 만든 달콤한 과일잼을 함께 넣어 납품했어요.”
◆라이스칩에서 옥고감까지
소비자들의 반응은 스타벅스와 전 대표가 예상했던 것보다 폭발적이었다. 미듬영농조합의 쌀과자류 제품은 3년만에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전 대표는 에너지바 형태의 라이스바, 과일을 말린 리얼후르츠 시리즈 등으로 제품을 확대했다. 2015년 경기도 농산물을 그대로 담아 판매한 옥고감은 당시 스타벅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해 미듬영농조합법인이 가공식품을 판매해 벌어들인 매출은 28억원에 달했다. 스타벅스 외에도 농협 하나로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채널에서 제품을 팔았고, 아시아나항공과 삼성웰스토리도 미듬의 제품을 쓴다.미듬영농조합의 쌀과자류는 모두 친환경 쌀로 만든다. 평택 오성면 전 대표의 논에는 우렁이가 함께 산다. 논 1500평(4950㎡)당 20~30kg의 우렁이를 키운다. 우렁이로 잡초를 제거하는 대표적인 친환경 농법이다. 비료는 인근 축사에서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우분을 공급받는다.
전 대표는 가공식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친환경 농법을 확대했다. 2007년 친환경쌀 재배 단지를 조성했고, 매년 친환경 농지를 넓히고 있다. 전 대표는 “가공식품을 만드는 것은 쌀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인데 친환경 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아이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먹이고 싶어하는 젊은 엄마들을 겨냥해 친환경 쌀 재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6차산업=가공식품화 “글쎄요”
가공식품 전문가인 그에게 정부의 6차산업 정책에 대해 물었다. 6차산업이 확대되며 전국 곳곳의 농가들이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분위기에 대해 전 대표는 “가공을 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은 맞지만 현재의 방식은 농민들에게 망하는 길로 이끄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이 아직 제대로된 가공식품을 만들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설명이다.
“논 한자리에서 재배된 쌀을 모두 팔면 400만원쯤 매출이 나와요. 이중에 한 200만원쯤이 이익입니다. 그런데 제대로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패키지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데만 400만원쯤 투자해야해요. 논 두자리에서 나는 매출을 모두 써야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투자를 할 수 있는 농민은 많지 않습니다.”
위생 관리 문제도 있다. “농산물 형태로 유통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씻어서 먹어야한다는 생각을 해요. 벌레 파먹은 자리가 있어도 대부분은 농약을 덜쳤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잘라내고 먹죠. 그런데 식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면 소비자는 물론이고 식약처의 기준이 엄청나게 높아져요. 이 기준을 일반 농민들이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생산과 가공을 분리해야할까.전 대표는 그게 바로 딜레마라고 했다. 그는 “미듬 영농조합법인의 가장 큰 성공요인 중 하나는 ‘농산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이 말을 하며 과일 가공공장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미듬의 과일 가공공장에선 자체적으로 개발한 건조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으로 건조를 시키는 일반 건조기에 과일을 널어놓기 전 고온으로 15분간 수분을 빠르게 제거하는 기계다. 수분을 제거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건조방법에 비해 최종 생산물의 유통기한이 길어진다.
전 대표는 “기계를 개발한 후 특허 등록을 따로 하지 않아 다른 회사들이 과일 가공공장에 같은 기계를 팔았지만 성과가 잘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만 돌렸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전 대표는 “우리 공장에서는 원료로 들어오는 과일의 단단한 정도 등 상태를 고려해 기계를 돌리는 시간을 세밀하게 조정한다”며 “이런 노하우는 농산물을 잘 아는 농민이 아니면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두가지 조언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전 대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가공에 대한 의지가 있는 농민만 선별적으로 사업화를 하는 것이다. 전 대표는 “일괄적으로 가공식품화를 유도하면 지원금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이 일단 공장을 짓고 가공식품을 만들고 본다”며 “사업 마인드가 있는 사람을 엄격하게 선별해서 지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향미로 만든 수제 맥주
인터뷰는 미듬의 사무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전 대표는 “날씨가 덥다”며 한 켠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생맥주 기계에서 맥주를 따랐다.
맥주는 카스와 하이트 등 일반 한국 맥주처럼 탄산이 강하면서도 요즘 뜨는 수제맥주처럼 은은한 향이 배어있는 맛이었다. 전 대표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라는 수제맥주 회사를 통해 출시한 쌀맥주”라고 소개했다. 한 식품 박람회에서 참가했는데 바로 옆 부스를 운영 업체와 인연이 됐다.
전 대표는 음료용 쌀 수출을 위해 중국 종자회사와 향이 나는 쌀 품종을 개발하고 있었다. 전 대표는 “향미를 소개하며 쌀맥주 공동개발을 제의했는데 그 회사 직원들이 바로 그 다음주 평택으로 내려왔다”며 “열정에 감명받아 협업하게 됐고, 수 차례 테스트 끝에 쌀 샴페인, 쌀맥주, 흑미를 넣은 흑맥주 등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협업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전 대표는 어메이징 브루잉컴퍼니 직원들과 함께 평택에 맥주 밭을 조성했다. 맥주의 원료인 홉을 심은 것. 전 대표는 “이곳에서 자란 홉으로 만든 맥주를 평택맥주로 이름붙여 팔면 좋겠다”며 “지역 특산주가 꼭 막걸리일 필요가 있냐”고 반문했다.◆‘100인의 농부’ 모으는 마을 비즈니스 기업가
농부이자 농산물 가공식품 전문가인 전대경 대표에겐 또 하나의 직업이 있다. 바로 ‘마을 비즈니스 기업가’다. 요즘 전 대표는 평택시 공무원들을 많이 만난다. 오성면 일대를 이름있는 관광지로 만드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오성강변 뚝방길 르네상스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오성면 일대를 흐르는 안성천과 진위천, 아산호에 이르는 강변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진 대표는 관광객들이 강변 관광 후에 오성면으로 들어와 다양한 농촌 체험활동을 하고 식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진 대표는 “미듬 영농조합의 논밭에서 이삭줍기나 블루베리 따기 체험을 한 후 쌀겨찜질방에서 찜질을 하고, 인근 막걸리 공장에서 양조장 체험을, 김치 공장에서 김치 박물관 관람을 하는 식”이라며 “지금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체험관을 연계하면 관광객이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식당들과 협업해 메뉴 개발도 하고 있다. 도토리묵을 넣은 쌀국수, 연어회를 올린 회국수 등을 테스트 중이다.
귀농귀촌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사업도 추진 중이다. ‘100인의 농부’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귀농인 1인당 50~100평(165~330㎡) 정도의 밭을 분양하고 농사를 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 대표는 이 밭에서 재배한 채소류 등을 미듬 영농조합에서 수매하고 일부는 지역 식당에 납품할 계획이다.
전 대표는 “기존의 귀농 지원사업이 농지를 빌려주는 데 그쳤다면 100인의 농부 프로젝트는 판로까지 연결해준다는 점에서 한걸음 더 발전한 형태의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고소득을 올릴 수는 없겠지만 은퇴자들에게 소소한 일거리와 용돈을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전 대표의 마지막 말을 옮긴다. “기존의 농업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산업이었죠. 그러다 원물이 아닌 가공식품까지 확장됐고요. 이제는 지역의 자연경관과 전통을 소비하는 커뮤니티형 체험산업으로 발전하는 것 같아요.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시끄럽기만 했던 평택에서 벌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농업과 농촌의 좋은 성공모델이 됐으면 좋겠어요.”
평택=FARM 강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