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축적된 경험지식, 문서감정 최고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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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3
훼손 문서 내용 읽고 진정성까지 판정한 사건브로커가 컴퓨터를 이용해 추심금액 중 1억원과 나머지 금액 중 10%를 받는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만든 뒤 고소인의 자필 서명을 오려 붙인 사건이 있었다.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은 필흔재생기, 분광비교측정기 등 감정장비를 이용해 필기구로 직접 썼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필압(筆壓)의 흔적 등이 관찰되지 않아 필기구에 의해 직접 기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사건브로커의 사문서위조 범행을 밝힐 수 있었다. 사무실 압수수색 시 확보한 2011~2014년 자금일보에는 연필로 기재한 공사 관련 비자금에 관한 지급 내역이 현금, 수표, 공무원 등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었으나, 추후에 자발적으로 제출한 2010년 자금일보에서는 연필로 작성한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밀 감정한 결과 지우개로 지우기 전 연필로 기재한 내용이 필흔으로 확인돼 비자금 지급 내역을 상세하게 밝힐 수 있었다.
지질·잉크성분 등 가려내 위변조도 감정
과학적 문서감정이 진실발견 기여할 것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
문서감정은 문서 작성에 사용된 문자, 기호, 인영, 잉크, 지질 등을 분석해 그 문서의 진정성 여부를 판정하거나 문서의 내용 중 일부가 훼손돼 판독 불가능한 경우 그 내용을 읽어내는 감정 분야로 과학수사 초기단계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과학수사 분야다. 초기에는 필적, 인영감정 등이 주를 이뤘으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질감정, 필기구 잉크성분 감정 등 다양한 위변조 여부 감정으로 발전했다. 지질감정은 198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첨가되는 충전제의 성분이 달라져 그 이전과 이후의 구분이 가능하고, 컴퓨터를 사용해 작성된 문서는 구축된 폰트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폰트를 대조해 봄으로써 그 작성 시기를 일정 부분 가늠해 볼 수 있다.문서감정 결과는 감정의 성질상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가능성 높음’ 또는 ‘판단됨’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은 다수의 감정관이 감정 결과 도출에 참여하는 연대 감정, 국제공인시험기관(KOLAS) 인정 등을 통해 감정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감정은 그 결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과학수사 윤리문제와도 직결된다.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에는 대부분 일선 검찰청으로부터 문서감정 의뢰가 들어오는데, 문서감정 결과에 따라 수사 경과와는 반대로 피의자가 혐의없음으로 처리되고 오히려 고소인을 무고로 인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검 문서감정실의 감정 사례를 보면, 뇌물사건에서 장부에 ‘7, 전달’(700만원 전달 취지)이라고 기재됐던 부분을 ‘7’에 가필해 ‘점’으로 고치고 ‘전달’이라는 문자를 삭제한 뒤 ‘심식사’를 추가해 마치 ‘점심식사’를 제공한 것처럼 가장한 부분을 밝혀내 범행을 입증한 경우도 있었다. 또 특허 관련 협정서 세 장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이 기재된 두 번째 장을 바꿔치기한 사건에서 계약서 세 장이 같은 프린터에서 출력한 것인지 감정한 결과,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의 토너 흡착 상태가 달라 결국 두 번째 장이 다른 프린터에서 출력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필자는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 콴티코연구소 문서감정팀을 방문했는데 우리와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도 외부 기업과 협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종이 재질 분석을 위해 제지회사와 협업하고 있었고, 족흔의 경우에는 족흔 DB를 운영하는 전문회사로부터 상업용 DB를 구매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제조업체와의 협업 필요성이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대검 과학수사부 문서감정실에는 문서감정 경력이 15년 이상 된 베테랑 윤기형, 윤영미, 홍현식 감정관이 근무하고 있다. 장기간 근무와 다양한 감정 경험으로 축적된 지식은 문서감정실 최고의 자산이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현대의 삶 속에서 문서감정실의 축적된 경험지식이 깊이와 넓이를 더해 문서감정 분야가 진실 발견에 더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