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의 비타민 경제] 비지떡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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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20여 년 전 필자가 미국에서 가난한 유학생의 삶을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밤새 치통을 느꼈던 필자는 다음 날 대학병원의 치과를 찾아갔다. 예약을 하고 찾아간 치과에는 손님이 필자뿐이었는데 의사가 한 시간에 손님 한 명만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서 치과에 가면 예약은 고사하고 환자가 바글바글한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았는데 한 사람당 치료 시간은 결코 10분을 넘지 않았다. 미국의 쾌적하고 여유로운 치과 치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더 놀라운 것은 치과 치료실의 모든 것들이 비닐로 씌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앉을 의자와 모든 치료 기구도 비닐로 씌워져 있었으며 심지어 의사도 우주인처럼 온몸을 비닐로 감싸고 있었다. 치료가 끝나면 간호사가 들어와서 의자와 치료 기구, 의사를 덮고 있던 비닐을 모두 벗겨내서 버리고 새 비닐을 덮었다. 치료 시에 환자의 침이나 혈액이 사방으로 튈 수 있는데 그것이 다음 환자에게 옮겨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국의 치과에서는 잘못하면 환자 간에 감염이 가능하겠다 싶어서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치료비였다. 한국에서는 당시 2만원이면 치료할 수 있었던 충치 치료가 미국에서는 20만원이었다. 그 이후로 웬만한 치통이 있더라도 꾹 참고 방학 중 한국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았다. 위생적이고 쾌적한 진료가 아무리 좋아도 가난한 유학생에게 20만원은 너무도 큰 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싼 비지떡은 맛도 영양도 떨어진다는 의미이지만 오히려 질적으로는 좀 떨어지더라도 가격이 훨씬 저렴하면 비지떡이 좋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 대학 교육에 대해서도 비지떡의 논리가 적용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대학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한번 교수가 되면 저절로 승진하던 제도가 변해 엄격한 연구와 교육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학교를 떠나는 교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느슨하던 한국 대학이 변화해 연구와 교육이 향상된 것은 좋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대학 등록금의 급격한 증가다. 해외 대학에 비해서 수업은 두 배 이상 하고 연봉은 절반도 못 받는 교수들에게 그냥 연구와 교육을 더 하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록금이 너무 올라가게 되자 나온 것이 바로 반값 등록금 정책이다. 가격을 고려하면 비지떡이 좋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