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약속 이행과 재산권 보호가 정의의 핵심"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연민(憐憫)과 공감(共感)의 원리가 존재한다. 무도한 폭한(暴漢)과 법을 심하게 위반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중략) 인간은 이런 자율적 본성을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형성한다. 하지만 인애(仁愛)가 없어도 사회는 존속할 수 있지만, 정의가 없으면 사회는 붕괴한다.”

중세시대에만 하더라도 인간의 이기심은 죄악으로 취급받았다. 근대에 와서도 토머스 홉스 같은 사람은 개인의 이기심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을 자연 상태로 두면 각자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결국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출신 사회철학자인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이기심을 경제활동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동인(動因)으로 봤다.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왜곡시킬 뿐이어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를 앞선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그의 생각은 1776년 출간한 《국부론》에서 구체화됐다.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그가 1759년에 쓴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국부론》의 논리적 토대가 되는 책이다. 인간 행동에 대한 고찰과 사회적 작동 원리에 대한 통찰이 스며 있어 《국부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평가받는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더 깊은 관심을 가진다”고 진단했다.“거만하고 냉혹한 지주가 자신의 넓은 들판을 바라보면서 이웃의 궁핍은 전혀 생각지 않고, 수확물 전부를 혼자 소비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그의 위(胃)는 자신의 욕심보다 훨씬 작다. 지주는 잉여 생산물을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에게, 자신의 저택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들에게, 자신과 가족이 소비하는 사치품을 공급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많은 사람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몫은 지주의 사치와 변덕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국부론》에는 더 세련되게 표현돼 있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얘기한다.”

개인의 이기심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홉스와 달리 스미스는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이라고 판단했다. 남과 더불어 세상을 사는 원리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교환을 통한 분업의 원리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각자 원하는 것을 각자 갖는’ 이기심의 교환이다.자유주의에 반감을 가진 이들은 스미스의 이런 ‘이기심’을 자주 공격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위기의 원인을 가진 자의 탐욕이나 이기심의 결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개인의 자율적 절제와 이것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 사회규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스미스에게 공감(共感)은 도덕의 출발점이다. 공감은 한마디로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그의 도덕철학 핵심인 인간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와 ‘자유 경쟁’ ‘정의’ 등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공감 능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스미스는 자유 경쟁과 정의 등을 통해서 이기심을 통제하는 경우에만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는 약속(계약) 이행과 재산권 존중 등이 중심이다. 폭력, 사기, 약속 위반과 같은 불의를 막는 게 정의의 역할이다. 국가는 정의의 버팀목이지만 그 역할은 제한적이다. “국가의 주요한 역할은 정의의 원칙이 유지되도록 개인의 명예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국가의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개인의 자율이 물 흐르듯 발휘될 때 개인의 ‘절제된 이기심’에 따라 자생적인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그것은 인위적인 이타심이 아니라 자연적인 이기심이라서 가능하다는 게 스미스의 통찰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