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가도 올라탄 최태원의 M&A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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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연합군, 도시바 메모리 인수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세 기업인이다. 고(故)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어 1998년 그룹 사령탑을 맡았지만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2003년 헤지펀드인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에 시달렸고 분식회계 사건으로 옥고까지 치렀다.
현장에서
"정유·통신 안주하면 죽는다"
공격투자로 그룹 면모 바꿔
'운좋은 2세' 딱지 스스로 떼
오너 경영자로서 이미지도 운이 좋다는 쪽에 가까운 것이었다. 국내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정유사와 통신사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대한석유공사(SK이노베이션)와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손쉽게 사들인 결과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최 회장과 SK그룹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은 것은 2012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였다. 최 회장은 “자칫하면 우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사내의 우려와 반발을 뿌리치고 인수를 결행했다. 정유와 통신에 안주하다가는 어느날 갑자기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에서였다.
공격적 투자의 결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은 무려 13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내수 기업이라는 꼬리표도 떼어냈다. 그룹의 지난해 전체 수출액은 59조5000억원으로 한국 전체 수출액의 11%를 차지했다.
전통산업과 첨단산업을 동시에 이끌고 있는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신호탄으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LG실트론(6200억원)과 SK머티리얼즈(4816억원), 다우케미칼 에틸렌 아크릴산(4220억원), SK매직(6100억원) 등이 최근 쇼핑 목록에 올랐다.이 가운데 화룡점정은 단연 일본 도시바메모리 인수 연합군의 일각을 차지한 것이다. 도시바가 누구인가. 한국 반도체업계의 스승이자 일본이 자랑해온 세계적인 기업이다. 21일 도시바 이사회 발표를 접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설마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났다”고 놀라워했다.
현존하는 제조업 가운데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업종이 반도체다. 생산라인 하나 까는 데 1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순간이라도 시장 흐름을 잘못 읽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도시바를 향한 최 회장의 진군은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맞먹는 철옹성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이제 ‘운 좋은 재벌 2세’라는 딱지를 떼어낼 때가 된 것 같다. 그가 직접 키우고 일군 기업들이 정유와 통신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