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토론] 자율형사립고 폐지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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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사립고 존폐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재정 경기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이 잇따라 “일반고로의 전환” 발언을 쏟아내자 학교와 학부모들은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교육계는 찬반 양쪽으로 갈려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즉각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자사고와 외국어고를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바꾸는 것은 일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도 저마다 성명을 내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자사고 폐지 찬성론자들은 자사고를 ‘교육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주범으로 몰고 있다. 자사고·외고 준비반이 서울 강남, 목동 등 사교육 1번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사교육 광풍을 몰고 왔다는 지적이다. 숫자는 전국 46개에 불과하지만 교육을 입시의 도구로 전락시킨 ‘도화선’이나 다름없으니 이를 없애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요 논지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오세목 자사고협의회장은 “단 2%의 다양성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고교를 획일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국영수 위주로만 가르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효근 하나고 교사는 ‘빅 히스토리’라 불리는 최신 과학 이론을 고교 과정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한국의 명문대 진학열을 자사고 탓으로만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찬성 "교육을 입시도구로 전락시킨 주범...'다양한 교육과정' 취지도 못살려"
입학 준비생 등 감안, 유예기간 두고 폐지해야
자율형사립고는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라는 중등교육 정책을 표방하면서 확산됐다. 당시 정부의 문제의식은 1974년 시행된 고교평준화 정책이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었다. 사립학교가 정부 재정지원을 받으며 학생선발권을 상실한 터라 독자적인 건학이념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고교획일화에 대한 완화 노력은 1995년 ‘5·31 교육개혁’에서 시작됐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일부 부여해 주는 방침이 나왔고, 2002년부터 자사고가 시범 운영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시범운영 결과에 대해 당시에도 이미 자사고가 건학이념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의 취지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국영수 위주의 수업을 비대하게 운영하고 있음이 지적됐다.
자사고는 교육법이 아니라 시행령에 존재 근거가 나와 있다. 모호하고 불안정한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법에도 ‘한시적인’ 학교로 규정돼 있어 법적 안정성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급조된 학교 유형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약한 법적 안정성과 ‘미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교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대단하다는 점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자사고에 대한 학부모의 소비욕은 마치 가격탄력성이 큰 사치재를 구매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등록금이 일반고에 비해 세 배까지 비싸지만 수요는 여전히 크다.자사고 문제를 얘기할 때 유의할 점은 이를 단순히 학교 유형들 중 하나로 봐선 안 된다는 점이다. 초·중등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사고가 성적 우수자를 독점하고 있는 탓에 일반고는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자존감도 하락하고 있다. 자사고를 목표로 하는 중학생들의 사교육 열풍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자사고의 특성화 프로그램이 과연 개별 자사고의 건학이념에서 도출된 고유하고 차별화된 교육과정인가 하는 의혹은 여전하다. 2010년 서울교육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부 종교계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사고는 거의 동일한 교육과정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국영수 과목에 대해 단기간 집중적인 수업을 하는 몰입과정, 학기 집중 이수제, 타 교과보다 많은 시간을 배정하는 중배(重倍)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자사고를 고집하려는 정책은 중산층 이상의 계층적 이해만을 보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교육비 지출과 대학입시를 위한 정보 독점력을 갖고 있는 계층이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구조를 유지시킨다는 얘기다. 이런 교육열의 근저에는 교육을 도구삼아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획득하고자 하는 ‘그릇된 교육관’이 놓여 있다.
물론 자사고 진학에 목을 매는 학부모 행동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학부모 입장에선 자식의 미래 준비를 위한 대안으로 교육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이런 교육적 난맥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자사고가 학부모의 교육적 욕망과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제도라면 국가가 관리·통제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아울러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고 있거나 입학을 준비하는 학부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몇 년간의 유예를 두는 일몰제(日沒制)가 합리적인 해법이다.
결론적으로 자사고는 그 도입 단계에서 표방한 ‘순수한’ 정당성을 이미 훼손했다. 교육 정책이 지금과 같이 계층적 편향성에 기반을 둔다면 교육의 공공성은 무너지고 만다. 자사고는 전체 대다수 국민 이해에도 어긋나며, 소수 사람들만 만족시키는 정책 중 하나다.
반대 "자사고와 경쟁으로 일반고 발전...폐지는 학교 선택권·자율성 침해"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해 사교육 유발 효과 적어
문재인 정부와 일부 교육청이 탄생한 지 8년밖에 안 된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추진하면서 교육계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자사고 폐지 명분은 고교 서열화, 사교육 조장 등이다. “자사고가 공교육 정상화를 저해하는 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율권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인식인 셈이다. 자사고가 상징하는 자율과 경쟁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사고를 통해 유도한 경쟁은 학생 개인 간 경쟁이라기보다는 학교 간 경쟁이었다. 일반고와 자사고 간 경쟁구도를 통한 고교 교육의 질적 향상 도모가 자사고 설립의 중요한 취지다. 교육 발전을 위해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것인데 이런 경쟁을 부정적으로 간주함이 과연 타당한지 묻고 싶다.
경쟁에는 역기능도 있지만 성취 동기를 유발하는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크다. 그렇기에 교육에서 경쟁을 활용하는 것이다. 정말 경쟁이 교육적으로 나쁜 것이라면 경쟁을 부추기는 모든 선발체제 및 시험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과연 이런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리고 이런 사회가 정말 바람직한 사회일까. 수반되는 부작용을 우려해 경쟁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경쟁은 학생, 교사, 학교를 움직이는 동인(動因)을 제공한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경쟁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외 계층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자사고의 가장 중요한 설립 취지는 단위학교 자율권 보장이다. 자사고 폐지는 학교의 자율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숙고할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자사고의 ‘적폐’가 자율권을 몰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가 하는 점이다. 단위학교의 자율권이 왜 중요한가. 학교 교육 다양성, 학부모 및 학생들의 학교선택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단위학교 자율성이 부정되면 학교 교육은 획일화되고 학교선택권도 무의미해진다.
자사고 제도는 학교선택권을 다소나마 확대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자사고 폐지는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부정함은 물론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학교선택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사립학교 폐지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관(官) 주도형 교육행정이다.당사자들은 자사고가 입시 사교육을 부추기고 고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시각에 대해 매우 억울해하는 입장이다. 현재 자사고는 학업 성적과 상관없이 무작위 추첨으로 입학 정원의 1.5배를 뽑은 뒤 간단한 인성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사고 입시만을 위한 직접적 사교육은 없다는 것이 교육계 중론이다.자사고 측은 자사고 폐지 추진이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전형적 포퓰리즘’이라며 반박했다. 자사고가 없어지면 오히려 새로운 ‘강남 8학군’이 출현하고 사교육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사고 폐지는 선과 악, 혹은 정사(正邪)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찬반 모두 그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사고 체제의 득실, 혹은 공과에 대한 투명하고 공개적인 논의 과정이다. 정책 결정에 앞서 공론화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자사고 폐지 추진 과정에서 군중심리나 대중적 시기심을 조장하려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무고한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교사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는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소수가 존중받는 사회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교육계는 찬반 양쪽으로 갈려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즉각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자사고와 외국어고를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바꾸는 것은 일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도 저마다 성명을 내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자사고 폐지 찬성론자들은 자사고를 ‘교육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주범으로 몰고 있다. 자사고·외고 준비반이 서울 강남, 목동 등 사교육 1번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사교육 광풍을 몰고 왔다는 지적이다. 숫자는 전국 46개에 불과하지만 교육을 입시의 도구로 전락시킨 ‘도화선’이나 다름없으니 이를 없애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요 논지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오세목 자사고협의회장은 “단 2%의 다양성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고교를 획일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국영수 위주로만 가르친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효근 하나고 교사는 ‘빅 히스토리’라 불리는 최신 과학 이론을 고교 과정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한국의 명문대 진학열을 자사고 탓으로만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찬성 "교육을 입시도구로 전락시킨 주범...'다양한 교육과정' 취지도 못살려"
입학 준비생 등 감안, 유예기간 두고 폐지해야
자율형사립고는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라는 중등교육 정책을 표방하면서 확산됐다. 당시 정부의 문제의식은 1974년 시행된 고교평준화 정책이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었다. 사립학교가 정부 재정지원을 받으며 학생선발권을 상실한 터라 독자적인 건학이념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고교획일화에 대한 완화 노력은 1995년 ‘5·31 교육개혁’에서 시작됐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일부 부여해 주는 방침이 나왔고, 2002년부터 자사고가 시범 운영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시범운영 결과에 대해 당시에도 이미 자사고가 건학이념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의 취지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국영수 위주의 수업을 비대하게 운영하고 있음이 지적됐다.
자사고는 교육법이 아니라 시행령에 존재 근거가 나와 있다. 모호하고 불안정한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법에도 ‘한시적인’ 학교로 규정돼 있어 법적 안정성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급조된 학교 유형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약한 법적 안정성과 ‘미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교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대단하다는 점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자사고에 대한 학부모의 소비욕은 마치 가격탄력성이 큰 사치재를 구매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등록금이 일반고에 비해 세 배까지 비싸지만 수요는 여전히 크다.자사고 문제를 얘기할 때 유의할 점은 이를 단순히 학교 유형들 중 하나로 봐선 안 된다는 점이다. 초·중등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사고가 성적 우수자를 독점하고 있는 탓에 일반고는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자존감도 하락하고 있다. 자사고를 목표로 하는 중학생들의 사교육 열풍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자사고의 특성화 프로그램이 과연 개별 자사고의 건학이념에서 도출된 고유하고 차별화된 교육과정인가 하는 의혹은 여전하다. 2010년 서울교육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부 종교계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사고는 거의 동일한 교육과정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국영수 과목에 대해 단기간 집중적인 수업을 하는 몰입과정, 학기 집중 이수제, 타 교과보다 많은 시간을 배정하는 중배(重倍)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자사고를 고집하려는 정책은 중산층 이상의 계층적 이해만을 보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교육비 지출과 대학입시를 위한 정보 독점력을 갖고 있는 계층이 우위를 가질 수 있는 구조를 유지시킨다는 얘기다. 이런 교육열의 근저에는 교육을 도구삼아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획득하고자 하는 ‘그릇된 교육관’이 놓여 있다.
물론 자사고 진학에 목을 매는 학부모 행동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학부모 입장에선 자식의 미래 준비를 위한 대안으로 교육 이외엔 없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이런 교육적 난맥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자사고가 학부모의 교육적 욕망과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제도라면 국가가 관리·통제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아울러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고 있거나 입학을 준비하는 학부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몇 년간의 유예를 두는 일몰제(日沒制)가 합리적인 해법이다.
결론적으로 자사고는 그 도입 단계에서 표방한 ‘순수한’ 정당성을 이미 훼손했다. 교육 정책이 지금과 같이 계층적 편향성에 기반을 둔다면 교육의 공공성은 무너지고 만다. 자사고는 전체 대다수 국민 이해에도 어긋나며, 소수 사람들만 만족시키는 정책 중 하나다.
반대 "자사고와 경쟁으로 일반고 발전...폐지는 학교 선택권·자율성 침해"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해 사교육 유발 효과 적어
문재인 정부와 일부 교육청이 탄생한 지 8년밖에 안 된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추진하면서 교육계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자사고 폐지 명분은 고교 서열화, 사교육 조장 등이다. “자사고가 공교육 정상화를 저해하는 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율권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인식인 셈이다. 자사고가 상징하는 자율과 경쟁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사고를 통해 유도한 경쟁은 학생 개인 간 경쟁이라기보다는 학교 간 경쟁이었다. 일반고와 자사고 간 경쟁구도를 통한 고교 교육의 질적 향상 도모가 자사고 설립의 중요한 취지다. 교육 발전을 위해 학교 간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것인데 이런 경쟁을 부정적으로 간주함이 과연 타당한지 묻고 싶다.
경쟁에는 역기능도 있지만 성취 동기를 유발하는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크다. 그렇기에 교육에서 경쟁을 활용하는 것이다. 정말 경쟁이 교육적으로 나쁜 것이라면 경쟁을 부추기는 모든 선발체제 및 시험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과연 이런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리고 이런 사회가 정말 바람직한 사회일까. 수반되는 부작용을 우려해 경쟁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경쟁은 학생, 교사, 학교를 움직이는 동인(動因)을 제공한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경쟁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외 계층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자사고의 가장 중요한 설립 취지는 단위학교 자율권 보장이다. 자사고 폐지는 학교의 자율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숙고할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자사고의 ‘적폐’가 자율권을 몰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가 하는 점이다. 단위학교의 자율권이 왜 중요한가. 학교 교육 다양성, 학부모 및 학생들의 학교선택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단위학교 자율성이 부정되면 학교 교육은 획일화되고 학교선택권도 무의미해진다.
자사고 제도는 학교선택권을 다소나마 확대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자사고 폐지는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부정함은 물론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학교선택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사립학교 폐지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관(官) 주도형 교육행정이다.당사자들은 자사고가 입시 사교육을 부추기고 고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시각에 대해 매우 억울해하는 입장이다. 현재 자사고는 학업 성적과 상관없이 무작위 추첨으로 입학 정원의 1.5배를 뽑은 뒤 간단한 인성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다.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사고 입시만을 위한 직접적 사교육은 없다는 것이 교육계 중론이다.자사고 측은 자사고 폐지 추진이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전형적 포퓰리즘’이라며 반박했다. 자사고가 없어지면 오히려 새로운 ‘강남 8학군’이 출현하고 사교육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사고 폐지는 선과 악, 혹은 정사(正邪)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찬반 모두 그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사고 체제의 득실, 혹은 공과에 대한 투명하고 공개적인 논의 과정이다. 정책 결정에 앞서 공론화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자사고 폐지 추진 과정에서 군중심리나 대중적 시기심을 조장하려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무고한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교사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는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소수가 존중받는 사회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