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장엄한 그곳, 요세미티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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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4) 요세미티 국립공원태평양을 떠나 산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중부 척추처럼 뻗어 있는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이다. 마크 트웨인이 극찬한 레이크 타호(Lake Tahoe)부터 알래스카의 디날리 산(Mount Denali)을 제외하곤 북미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산(Mount Whitney)까지 세상 모든 절경이 숨어 있다는 그곳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빛나는 것은 산맥을 수놓은 국립공원들이다. 거대한 계곡과 웅장한 화강암으로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깊은 협곡 속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들이 숨 쉬는 세쿼이아·킹스 캐니언 국립공원(Sequoia·Kings Canyon National Park)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바다보다 깊은 계곡, 하늘보다 높은 바위, 거인 같은 나무 밑을 거닐며 생각했다. 대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서울 5배 넓이의 대자연…북미 最高 요세미티 폭포는 '한 폭의 수채화'
'죽이는 자들' 뜻하는 요세미티
19세기 금광 찾아 백인들 몰려와 원주민 쫓겨나고 이름만 남아
6~10월이 여행의 최적 시기
공원 면적 1% 요세미티 밸리에 대표적 볼거리·편의시설 몰려
국립공원의 정신이 최초로 시작된 곳몬터레이를 떠나 꼬박 4시간을 달렸다. 빛이라고는 차의 전조등뿐인 구불구불한 길을 쉴 새 없이 오른다. 그때 두 개의 노란빛이 차 앞으로 갑작스레 뛰어든다. 깜짝 놀라 급정거하니 사슴 한 마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변을 둘러본다.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나무들의 실루엣이 보이고, 영하의 공기와 상쾌한 숲내음이 코로 스며든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심장,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예약해둔 요세미티 밸리 롯지(Yosemite Valley Lodge)로 향한다.
레인저가 환영 인사와 함께 요세미티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설명한다. “차에 절대 음식물을 두지 마세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곰을 현혹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안 돼요. 지금쯤 대부분 겨울잠에 들었겠지만 자연 속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의 강한 어조에 나 또한 고개를 힘껏 끄덕인다. 다음날 아침 창문의 커튼을 여는 순간 나는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근엄하게 솟아오른 화강암 바위 사이로 폭포의 웅장한 낙하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비로소 요세미티의 품 안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곳은 미국이다. 1872년 지정된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이 바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그러나 그보다 8년 전인 1864년, 당시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요세미티를 주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공식적으로 국립공원의 지위를 단 것은 옐로스톤이 최초지만, 자연 보호라는 국립공원의 정신이 가장 먼저 실행된 곳은 요세미티다.
요세미티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인 존 뮤어와 사진가 안셀 애덤스다.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뮤어는 평생을 미국의 자연을 보호하는 데 바쳤다. 특히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데, 그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1890년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세쿼이아 국립공원이 탄생했다. 애덤스는 흑백 사진을 통해 시에라 네바다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파했다. 그가 담아낸 요세미티의 마법 같은 풍경에 반해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동경하고 사랑했다. 개척이란 이름 아래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절, 자연의 숭고한 가치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인디언 말로 ‘죽이는 자들의 계곡’
가장 먼저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를 찾았다. 청명한 숲길을 지나니 높이 739m의 절벽에서 새하얀 물줄기가 3단에 걸쳐 낙하한다. 북미에서는 가장 높고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낙폭이 큰 폭포답게 웅장함이 남다르다. 폭포 주변을 거닐다 보니 문득 요세미티란 이름이 계곡의 오묘한 풍광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의미가 꽤 살벌하다. 본래 요세미티 일대는 수천 년 전부터 아와니치(Ahwahnechee)라는 이름의 원주민들의 터전이었다. 아주 호전적인 성향을 지녔던 탓에 시에라 네바다의 다른 부족들은 이들을 인디언 말로 ‘죽이는 자들(Those who kill)’, 즉 요세미티(Yos s e’meti)라고 불렀다. 이후 시에라 네바다에 금이 발견되면서 어김없이 백인들이 몰려왔고, 1850년 마리포사-인디언 전쟁이 발발했다. 악명 높은 마리포사 기병대를 원주민들이 이길 리 만무했다. 이들은 곧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 아득한 계곡 속 요세미티라는 이름만 남겨둔 채 말이다. 사실 원주민들은 요세미티를 곰이 입을 벌린 모양과 닮았다 하여 ‘크게 벌어진 입’이란 뜻의 ‘아와니(Ahwahnee)’라 불렀다, 계곡의 진짜 이름이던 아와니는 공원 내에 있는 호텔(현 마제스틱 요세미티 호텔)의 이름이 되어 작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마리포사 기병대의 이름은 공원 남쪽 세쿼이아 나무 군락지인 마리포사 숲과 인근 마을 마리포사에 남겨져 있다.
자동차 여행에서 암벽 등반까지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면적은 무려 3027㎢다. 일반인에게 전 구간을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의 약 5배에 달하는 크기가 온통 자연이라는 것은 놀랍다. 규모가 거대한 만큼 여행방법도 일정과 목적, 계절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보통 6~10월을 최적의 여행 시기로 꼽는다. 겨울철에는 상당 부분의 도로와 트레일이 폐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의 요세미티는 다른 계절에는 만날 수 없는 몽환과 적요가 가득한 설경을 선사한다. 스키와 스노보드 같은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공원은 크게 요세미티 밸리(Yosemite), 와오나와 마리포사 숲(Wawona and the Mariposa Grove), 글래시어 포인트(Glacier Point), 타이오가 로드와 투올러미 고원(Tioga road and Tuolumne Meadows), 그리고 헤츠 헤치(Hetch Hetchy) 지역으로 나뉜다. 그중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은 바로 요세미티 밸리 지역이다. 공원 면적의 1%에 불과하지만 요세미티 폭포, 하프 돔(Half Dome), 글래시어 포인트 등 공원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물론 각종 편의시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요세미티를 여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자동차나 셔틀버스를 이용해 주요 포인트를 둘러보는 것이다. 가이드 투어나 무료로 제공하는 레인저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좋다. 요세미티는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천국과 다름없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세미티 폭포 하단 트레일부터, 글래시어 포인트로 올라가는 4마일 코스까지 즐길 수 있는 트레일 등 트레일만 약 1300㎞에 달한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요세미티의 상징인 하프 돔 등반이다. 왕복 10~12시간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지만 매년 수많은 사람이 등정에 성공한다.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도 요세미티 밸리에서 시작한다. 킹스 캐니언과 세쿼이아 국립공원을 지나 휘트니 봉까지 이어지는 358㎞의 세계적인 트레일로 시에라 네바다 자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요세미티는 암벽 등반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단일 화강암인 엘 캐피탄(El Capitan)에 오르는 것은 등반가에게 평생의 꿈이다. 중력을 거슬러 대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깎아지른 수직 절벽 위에 가득 매달려 있다.
한 편의 걸작, 빙하 풍경을 만나다머세드 강(Merced River)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장엄한 화강암 봉우리 사이에 자리한 습지 위로 안개가 가득 피었다. 밸리 뷰 포인트(Valley View Point)에 다다랐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위로 계곡의 반영이 아른거린다. 스윙 브리지(Swing Bridge)를 지나 대성당 바위(Cathedral Rock), 삼형제 바위(Three Brothers), 센티넬 바위(Sentinel Rock) 그리고 대장 바위인 엘 캐피탄까지 황홀하게 올려다본다. 마치 요정의 숲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요세미티를 대표하는 또 다른 폭포인 브라이덜베일 폭포(Bridalveil Falls)에 오른다. 가장 쉬운 트레일에 속하지만 길이 꽁꽁 언 탓에 걷기가 만만치 않다. 188m에서 낙하하는 물줄기의 모양새가 정말 바람에 흩날리는 신부의 면사포 같다. 폭포수를 흠뻑 맞은 채 터널 뷰(Tunnel View)로 발길을 옮긴다. 전망대 앞에 서는 순간 펼쳐진 눈앞의 광경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고, 평생을 동경한 풍경이다. 그러나 실제 눈앞에 펼쳐진 요세미티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껏 지나쳐온 요세미티의 모든 장면이 한 폭의 완벽한 그림이 돼 있었다. 이 엄청난 걸작을 만들어낸 것은 빙하였다. 백 만 년 전 시작된 빙하의 침식작용은 협곡과 기암절벽을 조각했고, 녹은 빙하 물은 호수와 폭포가 돼 흘렀다. 수천 년의 시간을 자란 나무들은 계곡을 아득히 채웠다. 감동과 허탈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인간은 결코 창조할 수 없을 광경임을 깨달아서다.
석양이 지기 시작한다. 태양이 자리를 바꿀 때마다 예리하게 잘려나간 하프 돔의 표면이 심장처럼 붉게 빛난다. 절대 잊을 수 없을 인생의 풍경을 만났다.
거대한 나무와 다양한 생물군
시에라 네바다의 서쪽 등줄기를 따라 남하한다. 세쿼이아 나무 군락지인 마리포사 숲이 복구 작업으로 2017년 가을까지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세쿼이아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프레즈노(Fresno)를 지나 스리 리버스(Three Rivers)를 거쳐 4시간을 넘게 달린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지만 가는 길이 아름다우니 마음은 즐겁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은 이름 그대로 세쿼이아 나무가 주인공인 곳이다. 자이언트 숲(Giant Forest)에 들어서자 시나몬 빛의 거목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거대해서 마치 난쟁이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세쿼이아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 종류 중 하나다. 수명은 3200년이나 되고 높이도 100m까지 자란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크다는 나무를 찾아 나선다. 셔먼 장군 나무(General Sherman)다. 표지판과 트레일이 눈에 파묻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걱정도 잠시, 두 눈에 담기 버거운 크기의 나무가 위용을 드러낸다. 셔먼 장군 나무는 높이가 아니라 부피로 세계 제일이다. 그래도 최소 2200살이나 먹었고, 높이는 자유의 여신상과 맞먹는다. 밑동 지름은 11m에 육박한다. 팔을 가득 벌려 나무를 안아 보지만 어림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생물체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한없이 작을 뿐이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볼 것이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1500종이 넘는 식물과 꽃, 297종의 새와 동물들, 초원과 호수가 거대 삼림 속에 숨어 있다. 세쿼이아 나무의 모든 것이 담긴 자이언트 숲 박물관, 쓰러진 나무를 뚫어 만든 터널 로그(Tunnel Log), 뮤어가 시에라의 보배라 일컬었던 크레센트 미도우(Crescent Meadow)도 큰 볼거리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모노 록(Mono Rock)도 놓칠 수 없다. 가파르고 험난한 하이킹의 끝에는 요세미티에 버금가는 하이 시에라의 장관이 기다리고 있다.
▷여행정보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약 4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6시간 거리에 있다. 요세미티와 세쿼이아·킹스 캐니언 국립공원 모두 연중무휴이며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에 30달러로 1주일간 유효하다. 미국 내 다른 국립공원도 함께 방문할 예정이라면 미국 국립공원 연간 패스(80달러)를 사는 것이 효율적이다. 겨울철 방문 시 스노체인을 요구할 수 있으며 계절과 날씨에 따라 도로 개방 여부가 결정된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동과 서를 잇는 도로인 타이오가 패스는 보통 11월부터 길게는 6월까지 폐쇄된다. 국립공원 웹사이트에서 관련 정보를 지속해서 체크하는 것이 좋다.
요세미티=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