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20) 정(政)-3] 중국 한국 기업의 태생적 세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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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3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앞글 ‘정(政)<2>’에서 중국인의 ‘내투(암투)’와 사(私)조직에 대한 배경 및 특징을 얘기했다. 이번 칼럼 전반부에서 체면 중시와 관시의 구심력, 報(교환)의 철저함도 소개했다. 충성 대상 역시 개인이라고 했다. 국가 또는 조직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중국어의 三朝元老(삼대를 모신 원로)는 폄하하는 말이다. 3대에 걸친 충신이라는 말이 아니라 임금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는 의리 없는 자라는 말이다. 一朝君一朝臣(한 임금과 한 신하)이어야 존경받을 만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다소 미묘하다. 앞글에서 ‘官場(관료사회 또는 그 조직)’은 역대 왕조는 바뀌어도 여전하다고 했다. 충성의 대상이 국가라는 조직 또는 리더가 아니라 바로 나를 키워주고 지지한 개인(또는 조직 내 파벌, 즉 사조직)이기 때문이다.
강한 조직을 만들기 어렵다한편 무협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동창(東廠)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중국 명나라 때 환관을 중심으로 하는 황제 직속의 감시조직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법이나 시스템에 의지하기보다 사조직을 통해 견제했다. 만주족의 청나라는 몽고족을 비롯한 다른 북방민족 외에 한족 역시 배척하지 않고 포용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요한 기밀문서나 대화는 그들의 언어인 만주어로 남겼다고 한다. 명분을 내세운 커다란 조직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사조직이 있다. 그래야 든든하다. 수년 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투명장(投名狀)’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에서 관군과 토비(土匪·도적)의 차이에 대한 주인공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너희 관군은 돈을 위해 싸우지만, 우리 토비들은 가족을 위해 싸운다.” 정부의 관군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법을 지키지 않는) 도적 집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싸우는 ‘오히려 정의로운’ 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국 문화 속에서는 사조직이 무조건 부정적이지는 않다.
한국인, 한족 그리고 조선족중국 내 외자기업이 조직 운영에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강한 조직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가 구심력을 지니려면 사조직이 강하면 안 된다. 필자가 다녔던 회사는 회사 내 사조직을 철저히 차단했다. 회사 밖에서 형성된 모든 인연을 경계했다. 혈연, 지연, 학연 외에 종교적인 모임도 공개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았다. 당시 필자와 동료들은 이런 회사의 상대적인 ‘투명함’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나의 S그룹’은 ‘오직 S그룹이라는 조직’만 인정하는 강한 조직력을 보유했다. 그런데 이런 조직을 중국에서도 건설하려는 시도는 허망하다. 왜냐하면 중국 내의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파벌이 형성된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다. 중국의 한국 기업에는 항상 한국인, 그리고 최소한 중국인 한족(漢族)과 조선족이라는 자연스러운 파벌이 형성된다. 한족 직원들은 이런 불만을 말한다. “한국 기업에는 차별이 있는데, 한국인, 조선족 다음이 우리 한족이다.” 때로는 현지화라는 명분으로 과하게 한족을 우대하다 보면 “한족이 최고, 다음은 한국인이다. 조선족은 그저 소모품이다”라는 불만이 나온다. 실상은 차치하고 얘깃거리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한국 기업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런저런 관시로 얽히고 사조직의 일원이 된다. 대부분 일종의 디폴트로 가입(?)하게 된 사조직이야말로 나를 배반하지 않는 든든한 배경(山)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에서는 충성스러운 조직이 불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거트 호프스테드는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통용되는 경영개발 방법의 모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아마도 저마다의 조직마다 그에 맞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말이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면 우선 아래와 같이 말씀 드리고 싶다.보이지 않는 사조직은 위험
중국에서의 조직 운영은 우리와 다를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 내 사조직의 위험은 “만약 사전에 발견되지 않거나 혹은 구속하지 않는다면 (조직에 대한) 파괴성은 치명적이다”라는 금언을 기억하자. 타조의 시력은 인간의 10배 정도 된다고 한다. 키도 크고 달리기도 잘하지만 위험이 닥치면 머리를 모래에 처박는다고 한다. 내 눈에 안 보이니 그 위험을 피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어리석음의 대가는 치명적이다. 위험 회피의 시작은 바로 위험을 인지하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산에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보면 늘 길이 있다(車到山前必有路). 어렵다고 회피하지 말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그 해결의 첫걸음이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