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현 "똑바로 더 나간 드라이버 샷 '일등공신'…수학 문제 풀 듯 샷 성공확률 계산해요"

비씨카드·한경레이디스컵 2연패 오지현의 '우승 공식'
30일 개막하는 KLPGA 초정탄산수용평리조트오픈에서 2주 연속 우승을 노리는 오지현이 팬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뜻으로 손가락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30일 개막하는 KLPGA 초정탄산수용평리조트오픈에서 2주 연속 우승을 노리는 오지현이 팬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뜻으로 손가락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학교(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에서 수업 듣고 저녁엔 연습장에 갔어요. 평소 루틴입니다.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야죠.”

그래도 조금은 들떠 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생애 첫 타이틀 방어, 대회 첫 2연패라는 만만찮은 결실을 따낸 ‘비씨카드·한경레이디스컵 2017’ 챔피언 오지현(21·KB금융그룹)을 지난 27일 만났을 때다. 우승 후 이틀간의 행적과 소감을 물었더니 “우승 감격을 누리는 건 딱 하루면 충분한 것 같다”는 ‘묵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1년 전과 같은 대회, 같은 인터뷰지만 그의 1년은 다른 차원으로 그를 이끈 듯했다.최소 15야드 늘자 차원 다른 골프 눈떠

“투어 4년차가 됐으니 좀 노련해진 면도 있어요. 하지만 비거리가 완전히 달라진 게 더 큽니다. 3번 우드 티샷을 자주 해서 통계는 그다지 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는데 실제로는 최소 15야드 이상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됐거든요.”

등과 코어 근육을 키웠더니 밸런스가 좋아져 비거리뿐만 아니라 정확도까지 좋아졌다. 코어는 배꼽 주변과 옆구리, 엉덩이, 등허리 부분의 4~5가지 근육(횡격막, 다열근, 복횡근, 골반기저근 등)을 말한다. 헤드 스피드의 원천이다.오지현은 “같은 거리에서 한 클럽 짧은 아이언을 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른지를 처음 알았다”며 “드라이버는 쇼가 아니라 돈이라는 얘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강해진 힘이 근육과 관절을 잘 통제해 몸체의 불필요한 흔들림이 줄었다는 얘기다.

실제 ‘퀄리티 샷’의 척도인 그린 적중률이 투어에 데뷔한 2014년 69.40%였다가 올해 72.39%로 높아졌다. 데뷔 이래 최고치다. 홀컵 가까이 공을 보낸 덕에 퍼팅까지 쉬워졌다. 평균 퍼팅 수가 29.88로 올해 처음 ‘챔피언 존(zone)’으로 불리는 20대로 진입했다. 이번 대회 2라운드에서 생애 최저타 타이기록인 8언더파를 몰아쳐 역전우승의 발판을 놓은 배경이다.힘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스윙을 다듬은 게 날개를 달아줬다. 오지현의 스윙 코치인 조민준 프로는 “(지현이는) 몸의 흔들림이 많은 반면 상·하체는 제대로 꼬이지 않는 느슨한 스윙을 하고 있었다”며 “힘이 잘 축적되도록 하체 회전과 코킹은 적게 하되, 스윙 아크는 큰 스윙으로 바꾼 게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우승은 아일랜드가 준 선물”

그는 친한 지인이 “이름이 오(5)지현이니 이번 우승은 네 차례”라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진짜 우승할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번 대회 전 ‘지현’이란 이름의 챔피언이 네 번 연속 나오자 다섯 대회 연속 ‘퀸지현’ 배출 여부에 팬들의 기대감이 컸다. 오지현이 흥미로운 드라마를 완성한 것이다.운명을 믿는 걸까. 그는 “종교는 없지만 확실한 운명론자”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만 제대로 하면 나머지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물론 코스와의 궁합이 워낙 잘 맞았다. “제가 좋아하는 드로 구질에 유리한 코스가 워낙 많았습니다. 핀 위치도 드로 구질에 좋은 왼쪽이 많았고요. 게다가 평소 좋아하는 양잔디였죠.”

때로는 느슨한 골프가 좋은 결과 이어져

그는 어려서부터 체구가 작고 성격이 예민했다. 운동보다는 수학 물리학 의학 같은 공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지능지수(IQ) 143인 그는 수학경시대회 1등과 전교 1등을 한 적도 많았다. 오지현은 “골프도 확률게임인 것 같다”며 “샷을 할 때마다 수학문제 풀 듯 성공 확률과 위험도를 계산해보곤 한다”고 말했다. 뭐든 지기 싫어하는 승부사 기질은 수학 교사인 엄마(천미영·46)를 닮았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은 철인3종 마니아인 아버지(오충용·50)를 닮은 것 같단다. 아버지는 2년 연속 오지현의 캐디백을 메고 대회 2연패를 합작했다.

오지현은 완벽주의자다. 스스로 짠 스케줄을 어긴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공언한 일본의 야구 천재 스즈키 이치로를 연상케 한다. 결벽증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좀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불안했거든요. 방학숙제도 방학하는 그날이나 다음날까지 다 해치워야 속이 편했죠. (박)인비 언니가 그런 저보고 자기랑 성격이 비슷하다고 웃더라고요.”

“해외 진출은 아직 먼 얘기”

하지만 “골프는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그는 웃었다. 한 번 더 외우고 문제집을 더 풀면 보상이 따르는 공부와 달리 무작정 열심히 하면 오히려 부상을 당하거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열심히 골프’의 부작용이라는 것.

“골프는 내려놔야 잘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치겠다는 것보다 느슨하게 친 샷이 더 정확할 때도 많고요.”

그는 발동이 늦게 걸리는 편이다. 1·2라운드 성적보다 3·4라운드 성적이 좋고 통산 3승 모두 역전승을 거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일관된 경기력과 집중력을 유지해야 가능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그래서 한 번쯤 해보고 싶단다. 해외 진출은 아직 먼 얘기다.“국내 투어에서 경험을 더 쌓고 싶습니다. 아! 이제 가도 되겠구나 하는 때가 올 거라 믿거든요. 그때까지 성적이 좀 안 나와도 저 잊지 말아주세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