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 누가 만들었나…의구심만 더 키운 국정위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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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의 어설픈 정책' 비판에 진화 나선 국정위, 명단 공개새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어설프게 짜여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9일 “전문가들이 충분히 참여했다”고 반박하며 관련 전문가들을 공개했다. 하지만 관련 인사 중 원자력발전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은 정작 공약 입안 과정에서 배제됐고, 다른 인사들은 원전과 무관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인 것으로 밝혀졌다. 에너지 학계 및 연구계에선 “오히려 비전문가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이 짜여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민낯이 드러난 셈”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에너지 공약 전문가 4명 참여"
알고보니 거론된 인사 대부분 원전과는 무관한 비전문가
정책 총괄한 원전 전문가는 환경단체 반발로 배제시켜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 공약이 비전문가에 의해 수립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현 에너지공학과 교수, 전 원자력안전위원 등이 참여했다”고 말했다.국정기획위는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는 전문가들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권과 학계에 따르면 이들은 김진우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연세대 특임교수), 안남성 전 에너지기술평가원장(한양대 초빙교수), 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김익중 전 원안위원(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과 교수) 등이다.
김 전 원장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자문그룹인 ‘10년의 힘’ 멤버이자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경제분과 에너지팀장이었다. 그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친(親)원전 인사가 캠프에 들어갔다”며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후 김 전 원장은 정책 수립에 거의 관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선 정국에 큰 줄기만 의견을 제시하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정책 수립 등에) 관여하지 못했다”며 “급격한 탈원전 정책은 전력수급 차원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을 집어넣었는지는 알지 못한다”며 “나도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이어 “환경운동가가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환경운동가가 공약 수립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고 덧붙였다.
안 전 원장과 백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공약을 만드는 데 관여했을 뿐 원전 공약과는 무관하다. 안 전 원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탈원전 정책은 시작할 때 기본 전제조건으로 이미 들어와 있었다”며 “(우리가) 손을 댈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백 교수는 “지금은 에너지 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측과 커넥션이 없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탈원전 정책은 원안위원이었던 김익중 교수의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 김 교수는 “내가 처음 제안한 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가능성을 없앤 ‘전면 백지화’였다”며 “더불어민주당과 국정기획위를 거치며 많이 후퇴한 상태”라고 말했다.그는 “에너지 정책을 나 혼자 수립한 건 아니다”며 “비전문가 몇 사람이 만들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에너지학계 관계자는 “김 교수는 전공이 에너지 쪽과 거리가 멀지만 개인적 신념에 의해 탈핵운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며 “전문가가 아니라 환경운동가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날 국정기획위 발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탈원전 정책이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국정기획위가 내세운 전문가 대부분이 탈원전 정책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며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기조를 결정하는 데 원자력 전문가 의견은 듣지 않고 편향된 주장을 하는 환경론자들의 의견만 반영한 게 사실로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김일규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