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도 않은 '하버드 공대'가 대학평가 톱5에 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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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대학 꼴등대학' 출간한 대학평가에서 하버드대가 전자·컴퓨터 분야 톱5에 랭크된 적 있다. 대학 교수들의 동료평가를 토대로 순위를 매겼다. 그런데 당시 하버드대에는 공과대학이 없었다. ‘유령 학과’가 최상위권에 오르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서의호 저/마인드탭/1만2000원
대학평가 전문가인 서의호 한국대학랭킹포럼(URFK) 대표가 최근 펴낸 《일등대학 꼴등대학》에 소개된 일화다. 실체와 무관하게 대학을 평가하는 대학 순위의 허점을 꼬집었다. 다름 아닌 교수들이 그랬다는 점에서 대학평가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할 만하다.서 대표는 줄기차게 묻는다. “전통적 대학 서열에는 어떤 허점이 있는가? 각종 매체의 대학 서열은 믿을 만한 것인가? 대학 서열은 바뀔 수 있는가?” 저자는 영국 타임스고등교육(THE) 평가 자문위원, 포스텍 대학평가위원장 등을 맡은 경험을 살려 대학 서열과 평가에 대한 통념을 다양한 접근법으로 풀어냈다.
책은 대학 선택의 동기를 ‘신분의 동질화’에서 찾았다. 명문대 학벌은 그 집단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얻는 일종의 브랜드 가치다. 사회적인 평판과 명성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이 가치는 한 번 각인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하버드 공대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그래서다.
이처럼 책은 대학 서열의 허와 실, 대학평가의 신뢰성 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지만 “평가 자체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평가를 올림픽에 비유하기도 했다. 경쟁이 있으면 항상 서열이 존재하며 이를 높이려 힘 쏟는 과정에서 동기가 유발되고 실력도 향상된다는 긍정론이다.결정적으로 서 대표는 “대학 서열은 바뀔 수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대학의 평판이나 입학 성적 같은 보수적 요소와 달리, 랭킹은 의지를 갖고 개선해나가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변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등대학도 안주해서는 안 되고 꼴등대학도 좌절하지 말고 뛰라”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일등대학이 되기 위한 선의의 경쟁, 자율성을 근간으로 한 대학의 창의성. 저자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사실은 그게 대학 서열과 평가의 본질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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