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진돗개 예찬
입력
수정
지면A36
김광림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glkim@na.go.kr >어릴 때 ‘비스’라는 진돗개를 키웠다. 미역국을 줬을 때 먹지 않으면 혹여 뜨거워 그런가, 대신 먹어볼 만큼 정을 붙였다. 할아버지께서 복날 잡아먹는다는 소리에 비스를 데리고 사촌 형과 도망을 다니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진돗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진사모)’을 만들었고 ‘사단법인 진도개혈통보존회’로 이어오면서 진돗개는 지금껏 내 생의 든든한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되고 있다.
“10년이면 주인을 닮고, 100년이면 산야를 닮는다”는 진돗개는 천년 역사의 토종개다. 얼굴은 호랑이 형상에, 머리를 숙이면 구부린 황소나 우리 민둥산과 흡사하다. 눈은 잘 익은 대추같이 붉고, 귀는 작지만 쭈뼛하며, 목덜미는 우람차다. 털은 윤이 나고, 말아 올라간 꼬리는 결기를 감춘 듯하다. 직립한 앞다리에 올라선 가슴은 떡 벌어진 것이 옛집의 마룻대와 같다.진돗개의 제일 미덕은 충(忠)이다. 공직 시절 키웠던 진돗개는 늦은 밤 주차장에서 엔진을 끄면 단박에 알아차렸다. 집 문을 열면 펄쩍 뛰어 반겼다. 안마기로 등을 두드려주는 아내의 팔을 ‘나를 때리는 것’으로 알고 물어버린 적도 있다. 제 밥을 챙겨주는 이는 아내이건만 충성에는 서열을 두는 것 같다.
대담 용맹하며 절제력도 뛰어나다. 8박9일 출장을 다녀올 때 사료와 물을 큰 양푼에 담아두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구별 없이 마구 짖지 않고 처음 만난 멧돼지 공격도 서슴지 않지만 약한 상대에게는 털을 세우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집에 돌아오고 자기 집안에서는 똥오줌을 누지 않는다.
소통과 협업에도 능하다. 멧돼지를 잡을 때는 각자 흩어져서 길목을 지키다가 서로 신호를 준다. 공격을 가할 때 한 놈은 꼬리, 다른 놈은 귀, 또 다른 놈은 다리를 물고, 결국에는 목을 함께 물어 사냥을 하고야 만다. 진돗개의 본성을 두고 전문가들은 “포인터는 사냥에, 핏불테리어는 싸움에, 셰퍼드는 수색에, 레트리버는 사냥감 회수에 금메달이지만 진돗개는 종합점수로 최상의 챔피언”이라고 평한다.이런 진돗개에게 아쉬운 것은 함께 사냥한 뒤에 고기를 나눌 땐 저희끼리 싸운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내외적 안보·경제 현안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상대를 공격하는 데 골몰하는 ‘한국 정치’에야 비하겠는가.
‘진돗개의 미덕’을 닮고자 갈망하는 이들을 위해 진도개혈통보존회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진돗개를 무상으로 분양해오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토종 진돗개가 막역지우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김광림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glkim@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