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조업 생산공정에도 파견근로 허용해야

"적정 파견사업 운영·인력수급 위해
파견근로 '네거티브 규제' 도입하고 제조업에도 허용해야 효과 커져"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자동차 사건’에서 직접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물류, 출고 등 간접 부문에 종사하는 협력업체 근로자, 1차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2차 협력업체 근로자까지도 현대차 파견근로자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아 산업현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금호타이어, 현대제철, 포스코 관련 판결 등 최근 판결의 판시 내용에 따르면 연속흐름공정에서의 도급은 불법파견으로 판단돼 사내도급 운영 자체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제조업이 연속흐름공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로써 컨베이어벨트에 연동된 제조업의 모든 생산공정에서는 사내도급 방식의 아웃소싱이 사실상 모두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도급업무 내용이 전체 생산 과정에서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를 파견 요소라고 판단하는 것은 연속흐름공정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 전체의 노무도급을 금지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닌 것이 된다.적어도 도급계약을 통한 외부 노동력 활용은 헌법으로부터 보장된 기본권으로, 기업가적 권한에 속한다. 도급계약은 노동분업적 현대 경제체제 하에서 합법적으로 승인된 거래 유형이다. 특히 자동차산업과 같은 제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부 사실관계를 나열해 종합적 판단을 하고 이를 통해 도급인과 수급인의 이행보조자적 지휘명령관계를 쉽게 인정하는 등 파견이라는 법 형식을 강제하는 최근 판례의 태도는 재고돼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고용의 유연화와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외부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도급이나 위임 등 다양한 형태의 외부 노동력 활용 방법을 채택해 왔으며, 이에 대해 별다른 노동법적 규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노동법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측면에서 직업안정법상 근로자 공급 사업의 예외로 파견근로가 인정됐고, 이를 합리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파견법을 제정·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현행 파견법은 파견근로 자체에 대한 규제법이다. 현행 파견법 시행령에서는 새로 개정된 한국표준산업분류기준에 따라 재조정, 32개 업무로 확대됐지만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업무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엄격히 파견근로가 금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 변동 대응과 파견근로제도의 엄격한 규제의 대응 수단으로 불가피하게 등장한 것이 사내도급이다.따라서 파견이냐 도급이냐의 구별 문제, 즉 ‘위장도급’ 또는 ‘불법파견’ 문제는 제조업 생산공정업무에 대해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것, 즉 파견법상 파견업체를 한정하는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버리고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을 도입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우선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파견근로 수요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조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면 적극적인 파견근로 정책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파견법 규제를 받는 파견근로가 제조업 등으로 확대된다면 논란이 되는 위장도급을 파견근로로 유도할 여지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근로자파견법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정한 운영과 원활한 인력 수급을 위해 그동안 근로자파견법이 제대로 활용되거나 기능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향후 근로자파견법 개정은 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정한 운영과 원활한 인력 수급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근로자파견법 제정 목적에 부합하는 입법 개선, 제조업 생산공정업무에 대해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사내도급 문제 해결의 열쇠다.

김희성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