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진핑 이어 이번엔 푸틴까지… 문재인, 북핵 외교 '산 넘어 산'

< “잘 다녀왔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등 4박6일간의 해외순방 일정을 마치고 10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문 대통령 부부가 마중 나온 인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가 러시아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러시아는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의 북핵 공조에 ‘반기’를 들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과거보다 훨씬 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대미(對美) 외교에 치중하면서 러시아를 상대적으로 홀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더욱 밀착하게 한 틈을 준 면이 있다”며 “정권 초기부터 다자 외교에 파열음이 나면 곤란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 동북아에서 존재감 과시
러시아는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성명 채택을 무산시키고, G20 정상회의에서도 북핵 문제를 공동성명에서 제외시키는 데 막후 실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러시아의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러시아는 그동안 6자회담 당사국이면서도 한반도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태도를 취했다”며 “한반도 문제는 대부분 중국이 언급하고, 러시아는 옆에서 거드는 모양새였다”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미국을 의식해 동북아에서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고 진단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문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하고자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 정부가 2015년부터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 및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 활성화를 목적으로 여는 행사다. 푸틴 대통령은 이 행사를 통해 유라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다.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는 미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동북아 문제에 직접 나선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지금처럼 전면적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로선 다자 외교와 관련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 산맥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북·중·러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역학관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미국과 나란히 냉전 시기의 양대 축으로서 세계를 양분했다. 중국은 옛 소련의 도움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었고, 북한은 옛 소련으로부터 6·25전쟁에서 무기와 군사훈련 등 각종 지원을 받았다. 북한이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이유도 옛 소련 측이 경수로 제공의 조건으로 NPT 회원국이 될 것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소비에트 체제 붕괴 후 북한은 독자 핵 개발로 들어섰고, 러시아는 이를 막지 못했다. 중국도 북핵 개발을 묵인했다.러시아와 중국은 1990년대 초부터 급속도로 우호관계를 진전시켰다. 특히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으면서 러시아는 중국에 더 의지했고, 최근 양국 간 협력이 더욱 긴밀해졌다.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는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사이며, 북한은 동북아에서 미국과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완충지대이자 중·러 간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중국과 러시아는 결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