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일자리 도둑?…신기술이 상상 못할 기회줄 것"

유럽의 실리콘밸리 에스토니아를 가다

'디지털 정부 사령탑'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

일본 미슬토우 타이조 손 대표 "에스토니아의 최대 경쟁력은
기업인이나 투자자가 언제든 대통령에 전화할 수 있다는 것"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왼쪽 세 번째)이 지난 5월25일 탈린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포럼 ‘래티튜드(Latitude)59’에서 자국의 스타트업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카이디 루사렙 펀더빔(에스토니아 스타트업) 대표, 페테르 베스테르바카 전 로비오(게임 앵그리버드 개발업체) 대표, 칼률라이드 대통령, 손태장(타이조 손) 일본 미슬토우 대표. 유창재 기자
“트랙터에 세금을 매겨 농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보조금으로 나눠줬다면 산업혁명의 과실을 전 사회가 향유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난 5월25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스타트업 포럼 ‘래티튜드 59’ 행사장. 기조연설에 나선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입을 열 때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창업자와 투자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로봇에 세금을 물려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산업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일부 지식층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자리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에스토니아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정보기술(IT) 발전과 혁신적 스타트업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바를 설파해왔다. 이날 연설에서도 그는 “보조금을 지급해 사람들의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대신 기술이 사회 전체의 수익 창출 능력을 얼마나 끌어올리는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나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주택 등 남는 자산을 활용해 돈을 벌고 있다는 설명이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평소에도 창업자나 투자자들과 격의 없이 만나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날 기조연설 후에도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핀란드 게임업체 로비오의 전 대표인 페테르 베스테르바카, 일본 투자회사 미슬토우의 타이조 손 대표, 에스토니아 스타트업 펀더빔의 카이디 루사렙 대표 등과 함께 에스토니아 창업 생태계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손 대표는 “기업인이나 투자자가 건의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대통령, 총리에게 전화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이 나라의 최대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칼률라이드 대통령뿐 아니다. 전임 토마스 헨드리크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에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을 자랑하는 글을 자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나라를 국빈 방문할 때도 대기업 경영자들 대신 이제 막 설립된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대동했다. 마틴 랜드 바이탈필즈 창업자는 “에스토니아 정치인들은 말뿐 아니라 실제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스타트업에 할애한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해답이 기술 발전과 이를 활용한 스타트업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특히 에스토니아 정치인들은 디지털 혁명의 혜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에스토니아가 디지털 사회를 이루는 과정에서 최첨단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다”며 “디지털 사회는 누구나 포용하고 언제든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백, 수천만 인류의 삶을 바꾼 건 저렴한 자동차와 세탁기지 달 탐사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탈린=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