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군중이 몰려드는 '그곳'…투자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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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피셔 역발상 주식 투자주식시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장 가운데 완전경매시장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입찰 자격은 전혀 제한이 없고 금액 제한 규정도 없다. 실시간으로 낙찰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 조작이 일어나기도 어렵다.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도 즉각적이다. 합리적인 시장 참여자가 모든 정보를 이용하고, 그것이 가격에 반영된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태어난 배경이다.
켄 피셔 등 지음 / 이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408쪽 │ 2만2000원
유행하는 투자방법·이론은 참여자 많아질수록 효과 급감
수익 내려면 역발상 훈련 필요…행동재무학 공부해 실수 줄여야
이상건
그러나 시장은 효율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는 이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장은 길게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지만 단기간 놓고 보면 비효율적일 때가 있다. 주식시장에는 정보뿐만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기대와 견해가 개입된다. 이들은 탐욕과 공포를 느끼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에 영향을 받아 ‘집단사고’를 한다. 시장의 비효율성이 빚어지는 이유다.남보다 나은 투자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남과 달라야 한다. 바로 ‘월가 최고의 전략가’ 켄 피셔가 엘리자베스 델린저와 함께 쓴 《켄 피셔 역발상 주식 투자》에서 말하는 ‘방 안의 코끼리’를 알아채야 한다. 방 안의 코끼리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유용한 정보’를 말한다.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양적완화 종결, 금리 인상, 테러, 대통령 선거 등은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는 정보 또는 의견이다. 방 안의 코끼리가 아니다.피셔는 주식 전문가들의 분석 대상인 이런 이슈는 대부분 시장 가격에 반영돼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이후 벌어졌던 테러와 주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면서 단기적으로 주가의 변동성은 높아졌지만 시장의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때가 되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국가부채 이슈도 사실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역사가 보여주는 사실은 부채라는 단독 변수로 국가가 파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부채가 파멸의 원인이라면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의 번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피셔의 진단이다. 다시 말해 이미 알려진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다. 시장은 대부분 효율적이기 때문에 알려진 악재를 가격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유행하는 투자 방법이나 이론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적어서 효과가 있지만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그 효과는 떨어진다. 1987년 블랙 먼데이(주가 대폭락)의 주범 중 하나가 ‘포트폴리오 보험(PI)’이란 투자 전략이었다. 이 투자 전략은 초기엔 유효했지만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시장이 폭락하는 주요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피셔는 방 안의 코끼리를 보기 위해서는 역발상 사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발상 투자는 남들, 즉 군중과 반대로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르게 가는 것을 뜻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시장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고 믿으면 역발상 투자자는 그와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다.하지만 현실에서 남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투자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일종의 두뇌훈련 지침서’라고 표현한다. 역발상식 두뇌 훈련을 위해서 투자의 고전과 역사 그리고 행동재무학을 공부하라고 얘기한다. 고전에서 대가들의 투자 경험과 지혜를, 역사에서 주식시장의 순환성을, 행동재무학에서는 투자자가 흔히 범하는 실수를 배우라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군중을 이겨라(Beat The Crowd)’다. 투자의 세계에는 ‘다수가 가는 길은 꽃으로 치장돼 있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군중이 가는 길이 실패로 가는 길이라는 시장의 엄혹한 진실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피셔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은 군중이 예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켄 피셔의 아버지는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의 저자 필립 피셔다. 그는 소수 종목에 장기 투자하던 전설적인 투자가였다. 필립의 전설적인 종목이 바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다. 필립은 무려 이 주식을 30년 이상 보유했다. 워런 버핏은 “내 투자철학의 80%는 벤 그레이엄, 20%는 필립 피셔에 빚지고 있다”고 했다. 투자의 역사에서 대(代)를 이어 대가의 반열에 오른 경우는 흔치 않다. 대가 아버지로부터 태어나 투자 대가로 성장한 저자의 성장사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물론 그런 가정환경을 빼놓더라도 이 책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상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