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3D프린팅 기술, 해군함정에 접목한다

한국기계연구원, 함정손상통제SW 국산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화학무기 해독제 개발 추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1973년 개발한 첫 국산 고속정 ‘KIST 보트’.
해군 장병 마흔여섯 명의 생명을 앗아간 2010년 천안함 사건은 해군 함정 건조 철학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전까지는 함정에서 생활하는 장병의 생활을 방해하는 소음을 차단하고 적 함정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외선이나 레이저 반사를 줄이는 쪽에 힘을 쏟았다. 사고 이후에는 미사일이나 어뢰에 맞았을 때 인적·물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하고 있는 함정손상통제관리 소프트웨어는 얼마 전 일본 앞바다에서 미국 구축함과 필리핀 상선 간 충돌 사고 때처럼 심각한 사고가 났을 때 위치별 신속한 대응 방법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해군 함정에 적용된 이 소프트웨어는 캐나다 엘스리맵스 등 외국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영어로 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정훈 한국기계연구원 국방기술연구개발센터장은 “해외 회사에 해군 함정의 기본 구조부터 대응 체계 같은 핵심 기밀을 넘겨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2020년까지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이툰부대의 탐지로봇 롭해즈.
함정에 장착된 센서 수백 개가 수집한 선박 빅데이터를 활용해 함정 운영과 정비에 활용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포탑과 엔진 등에 공급되는 청수(맑은 물)는 함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핵심 기능 중 하나다. 미국 줌발트급 구축함엔 청수가 누수되지 않도록 배관에 인공지능(AI) 기반의 고장 진단 및 예측 시스템을 갖췄다. 기계연구원도 배관 시스템을 중심으로 장기적으로 손상관리 시스템과 추진기관, 전투시스템 등을 통합 제어하는 시스템을 독자 구축할 계획이다.

백경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전차와 장갑차 등 군 장비에 미리 스프레이를 뿌려놨다가 화생방 공격을 받으면 표면 코팅막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오염을 막는 신개념 제독제를 개발하고 있다.미 해군은 모든 전투함에 기계부품을 출력할 수 있는 보수용 3차원(3D) 프린터를 비치하고 있다. 영국과 중국 해군도 일부 함정에 3D프린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유병현 KIST 선임연구원은 3D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부품을 진단하고 현장에서 제조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출연연들은 1970년대부터 군에서 필요한 무기와 장비의 국산화 개발에 참여했다. 한국 최초 120t급 국산 고속정 왕기러기호(일명 KIST 보트)를 비롯해 제4 땅굴을 탐지한 초광대역 레이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제역할을 찾지 못하는 출연연들에 국방과 사회 안전 분야에서 민간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임무를 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