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이대훈,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38년 '농협맨'…"현장경영 앞세워 시중은행 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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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뇨까지 치운 지역농협 시절이대훈 농협 상호금융 대표(57)는 ‘타고난 농협맨’이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을 뿐 아니라 19세 때부터 38년간 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역농협에서 농협은행을 거처 상호금융 대표까지 농협의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했다. 지난 17일 만난 이 대표는 “사회생활을 지역농협에서 상호금융 업무를 담당하며 시작했습니다. 농협에서 잔뼈가 굵고 여러 금융업무를 해본 경험을 토대로 1금융(은행)보다 더 나은 2금융(농협 상호금융)을 만들어 보겠습니다”란 말을 먼저 꺼냈다.
과일 출하·가축 판매 모두 경험…저리 대출로 농촌사채 줄이기도
이론 대신 현장에 답 있다
농협 교육원 조교수 맡아 직접 농장 조성해 영농 교육
1금융보다 나은 2금융 만들겠다
'소비자 만족 3.0' 선언…농가 소득 5000만원 시대 열 것
농협 상호금융은 덩치 큰 ‘공룡’이다. 예수금은 국내 금융회사 최대인 290조원에 달한다. 전국 4659여 개 영업점에서 3만500여 명의 임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덩치가 크면 굼뜨다는 속설은 농협 상호금융엔 통하지 않는다. 과·차장이 직접 대표이사에게 보고하고 소통하는 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실제 이날 이 대표의 집무실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직원 두 명이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직원들 의견은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현장에 반영된다. 이 대표가 지난해 11월 취임한 뒤 나온 변화다. “거대한 조직일수록 현장과 의사결정자 사이의 간격을 줄여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현장을 뛰는 직원들의 발을 믿습니다. 평상시 업무 보고를 부장이나 임원에게 받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상호금융 주인인 농업인의 의견을 직접 듣는 직원이 의견을 내야 회사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38년 농협맨이 된 농민의 아들
이 대표는 경기 포천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두 명, 아래로 여동생 두 명이 있는 화목한 가정이었지만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우수했지만 영세농 아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특수대인 농협대를 그에게 권했다. 학비도 들지 않고 취직자리도 보장된다고 했다.“처음부터 농협인을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죠. 200명이 합숙하면서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수업을 받았습니다. 농협대는 직원 양성기관을 넘어 농업인을 잘살게 하기 위한 ‘협동조합 운동가’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였어요. 시험은 무감독이었고 자존심도 대단했죠. 조합원의 양질의 삶을 추구한다는 협동조합 정신을 아직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지역농협인 포천농협에 들어갔다. 금융업무는 물론 경제사업까지 일은 넘쳐났다. 철에 따라 마을을 돌며 토마토와 참외를 걷어 출하했고, 서울 을지로에 있는 생활물자사업소에서 물건을 떼 하나로마트에 공급했다. 이 대표는 “마장동에 가서 가축을 팔 때는 온몸이 분뇨 범벅이 돼 사람들이 멀리하는 곤혹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금융과 경제사업을 같이 하면서 현장에 답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때 경험이 현장을 중시하게 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촌지역 사채를 줄인 것을 의미있는 경험으로 꼽았다. 그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지방에는 연 100%가 넘는 고금리 사채가 만연했다”며 “상호금융이 저리로 농민에게 대출해줘 사채를 없앤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직접 해보지 않으면 직성 안 풀려”
농협중앙회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이 대표의 현장 중시 철학은 계속됐다. 그는 1994년부터 농협 안성교육원 조교수를 지냈다. 조합원에게 선진 농업기술과 우수 영농 사례를 가르치는 업무를 맡았다.
이 대표는 교육 과정이 겉돈다고 느꼈다. 이론에 치중한 커리큘럼이 문제였다. 조합원들은 책 속 내용만 보고 기술이나 영농 사례를 이해하기 어려워 했다. 이 대표는 교육원 옆에 실습농장을 조성했다. 2만3140㎡(약 7000평) 규모 농장엔 전국 각지에 우수 영농 사례를 보고 체험할 시설이 들어섰다. 돼지 200마리와 닭 2000마리를 자연농법으로 키우는 축사도 세웠다.“우수한 영농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가서 직접 배워와 실습농장에 적용했어요. 농장을 관리하다 보면 집에 한 달에 한번 들어가기 일쑤였죠. 토착미생물을 활용한 자연농법 등 우수사례를 조합원이 배워가 소득이 늘어나는 걸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이 대표는 금융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역영업본부장을 연달아 맡아 실적이 만년 꼴찌였던 경기, 서울을 전국 수위권으로 올려 놓은 것. 이 대표는 말보다 발을 앞세운 것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그는 “아침 출근을 매번 다른 영업점으로 해 직원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어요. 서울지역 170여 개 영업점을 다 돌자 직원들 이름을 거의 외울 수 있었습니다. 지점마다 영업을 잘하는 직원을 만나 비결을 묻고, 다른 지점에 전파했습니다. 영업기밀 메신저 역할을 한 거죠. 저녁엔 부정기적으로 영업 관련 포럼도 열고 100~200명의 직원을 모아 맥주파티를 하니 실적은 자연스레 따라왔습니다.”
“은행 뛰어넘는 회사 만들 것”
이 대표는 농협 상호금융을 시중은행을 뛰어넘는 금융회사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농협은행에 있으면서 배운 1금융권의 DNA를 상호금융에 이식하면 서비스나 금융상품 면에서 개선할 수 있다”며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놔 국민과 농민이 어깨동무할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관심을 두는 부문은 금융서비스다. 그는 취임 직후 ‘소비자만족(CS) 3.0’을 선언했다. 그는 매일 아침 각 부서를 찾아가 직원들과 함께하는 체조로 일과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 고객 서비스 실천과제 등을 율동으로 표현한 ‘CS 3.0 체조’도 직접 만들었다. 이 대표는 “도서 산간에서도 서울 시중은행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농협 상호금융은 지난달 ‘행복이음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추구하는 이 상품은 고객이 상품에 가입하면 농·축협과 상호금융이 ‘아름다운동행기금’을 출연한다. 기금 규모에 따라 ‘행복이음목돈플러스적금’에 가입한 농업인에게 최대 3.0%포인트의 우대금리(어깨동무금리)를 제공하는 식이다. 농업인에게 약 5%의 금리 혜택을 제공해 실질적인 농가소득 증대 효과가 발생하고, 잔여기금은 청년창업농 및 사회 소외계층 지원에 활용된다.
이 대표는 “조합원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는 가족이자 주인”이라며 “3000만원대 중반인 농가 평균소득을 5000만원까지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대훈 대표 프로필△1960년 경기 포천 출생△1979년 동남종합고교 졸업 △1981년 농협대 졸업 △1981년 포천농협 입사 △1985년 농협중앙회 입사 △1994년 농협 안성교육원 조교수 △2004년 경기도청 출장소장 △2009년 서수원지점장 △2010년 광교테크노밸리 지점장 △2013년 NH농협은행 프로젝트금융부장 △2015년 경기영업본부 본부장(부행장보) △2016년 서울영업본부 본부장(부행장보) △2016년 11월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대표이사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