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대는 이미 초토화…석·박사 한 명 없는 학과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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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과대학전남의 사립대 토목공학과 A교수는 작년까지만 해도 ‘홀로 연구’를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대학원 ‘랩(lab)’이 텅텅 빈 터라 콘크리트 혼합물을 섞는 일도 스스로 해야 했다. A교수는 “올해 가까스로 석사 한 명과 포닥(박사후과정) 한 명을 받아 연구 논문을 위한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지방 사립대 대학원은 공대조차 사람을 뽑지 못할 정도로 거의 초토화됐다”고 하소연했다.
연구 도와줄 학생 없어
정부과제 못하는 교수 많아
동남아 유학생으로 '랩' 채워
지방 대학원의 공동화 현상은 서울보다 훨씬 심각하다. 무(無)시험에다 등록금만 내면 누구든 입학할 수 있지만 수년째 정원을 못 채우고 있다. 석·박사를 한 명도 못 받는 학과가 속출하는 지경이다.20일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일반 대학원 수는 총 184개(작년 4월 기준)다. 4년제 대학이 195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지간한 대학은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대학 정원을 묶어놓다 보니 대학마다 상대적으로 정원 운영에서 자유로운 석·박사 과정을 늘려놨다”며 “지방으로 갈수록 이 같은 경향이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자리는 많은데 들어가려는 학생들은 매년 줄고 있다. 학부를 졸업한 학생 중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들의 비율(대학원 진학률)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공대조차 20~30% 수준이다.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대학원생이 있어야 교수가 연구과제를 딸 수 있고, 그래야 대학원생들에게 인건비 명목으로 생활비를 대줄 수 있다”며 “지방대들은 연구를 도와줄 석사조차 못 구해 정부과제에 도전도 못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KAIST, 포스텍, 울산·광주·대구과학기술원 등 이공계에 특화된 5개 국립대에 학생들이 쏠리고 있는 점도 지방대 대학원의 공동화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광주과기원 관계자는 “학비가 공짜고 국비로 매달 100만원 안팎의 생활비도 나온다”며 “입학시험도 영어로 된 전공시험에다 수학을 따로 봐야 해서 지방 사립대 학부를 나온 학생들은 들어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지방 대학원들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유학생들로 비어가는 랩을 채우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