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 터진 수도권…기상청 또 '헛발질'

서울·경기 남부 폭우 없다더니…시흥 시간당 100㎜ 쏟아져

경기·인천 '물난리'로 피해 속출

"자고 일어나니 집기들 둥둥 떠다녀"
도로 침수되고 지하철 운행 중단, 화성 등지에선 낙뢰로 순간 정전
안전처 "큰 피해 없을 것" 낙관…조직개편 앞두고 '무사안일' 지적도
< 서울 133mm 폭우 > 서울, 인천 등 11곳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버스 한 대가 보행로에까지 튈 정도로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울 세종대로를 지나고 있다. 이날 낮 12시까지 서울에만 133㎜에 달하는 비가 내렸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울과 경인 지역에 ‘물폭탄’이 쏟아졌다. 경기 시흥엔 시간당 96㎜의 폭우가 내렸다. 심각한 비 피해를 본 충북 청주 지역의 시간당 최대 강우량(91.8㎜)을 뛰어넘는 양이다. 갑작스런 폭우로 피해가 속출하면서 ‘오보 기상청’과 ‘뒷북 안전처’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구멍 뚫린 수도권 하늘23일 수도권은 ‘게릴라성 폭우’로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서울 133.5㎜, 시흥 129.0㎜, 군포 121.5㎜, 광명 109.0㎜, 의왕 108.5㎜, 파주 107.5㎜, 광주 107.0㎜ 등 누적 강우량이 100㎜를 넘은 곳은 모두 서울·경기였다. 집중호우 기준인 시간당 30㎜ 비만 내려도 차량 앞 유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이날 비로 사망자도 발생했다. 인천 구월동의 한 주택에서 A씨(95)가 호흡 정지 상태로 방 안에 가득 찬 빗물에 떠 있는 것을 윗집 주민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곳곳에선 아찔한 사고가 잇따랐다. 인천 청천동에서는 서울지하철 7호선 공사장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7명이 지하 150~300m에 고립됐다가 간신히 구조됐다.침수 사고가 속출한 지역 주민들은 울상을 지었다. 경기 고양시에서는 오전에만 128가구의 침수 피해가 신고됐다. 인천에선 주택 360여 곳이 침수됐다. 인천 구월3동에 사는 김모씨(83)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골목에 물이 가득 차 집기들이 둥둥 떠다녔다”며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딴 세상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불광천길 증산철교 하부도로 양방향과 제2외곽순환도로 인천 북항터널 양방향 도로도 침수돼 통제됐다. 인천 부평역에선 선로 일부가 물에 잠겨 경인선 인천~부평역 간 양방향 전동차 운행이 20여 분간 중단됐다. 경기 광명의 가구전문점 이케아와 화성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는 낙뢰로 전기 공급이 끊겨 순간 정전이 발생했다.

◆폭염, 폭우 반복되는 날씨일부 시민은 기상청 오보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기상청은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지역에 비가 집중될 것으로 예보(22일 오후 5시 기준)했다. 서울과 경기 남부지역까지 폭우가 내릴 것으로는 관측하지 못한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장마전선이 애초 예상보다 남쪽으로 내려왔다”며 “장마전선 위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기술적으로 힘들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기상 예보를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호우 피해 대처의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날 오전만 해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비구름이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어 보도할 만한 비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크고 작은 비 피해가 나오자 안전처는 뒤늦게 “피해 조사를 거친 뒤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안전처가 행정자치부와 통합되는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는 지난 20일 안전처를 폐지하고 행자부와 통합해 행정안전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안을 통과시켰다. 안전처가 폐지되면서 해양경찰청과 소방청은 각기 외청으로 독립된다. 서울과 경인지역이 폭우에 시달린 반면 남부 지방은 폭염으로 들끓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