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착한 성장, 착한 과세…'착한 정부' 콤플렉스 아닌가

요즘 정부·여당에서 ‘착한~’이란 말이 풍년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의 브랜드부터 ‘착한 성장’으로 잡았다. 성장 목표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중심 성장, 소득주도 성장 등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착한 성장’을 내건 것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이 주도한다고 한다.

최근 논란을 빚는 ‘부자 증세’에 대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부자 감세를 정상화하는 착한 과세”라고 이름 붙였다. ‘명예 과세’, ‘사랑 과세’, ‘존경 과세’에 이어 작명이 하나 더 추가됐다. 앞서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논의가 난항을 겪을 때도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은 ‘착한 추경’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기업인 대화에 중견기업으론 유일하게 초청된 오뚜기도 ‘착한 기업’의 대명사처럼 여긴다.‘착한’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성정을 묘사하는 형용사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가격이 착하다’처럼 구분 없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국정에서까지 ‘착한~’을 남발하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착한~’에는 이미 가치판단이 담겨 있다.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은 ‘착하고’, 반대되는 견해나 이전 정권의 정책은 ‘못됐다’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풍긴다.

정책은 효과나 부작용이 있고 없음이 관건이지, 선악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 경제·사회현상의 복잡다단함을 이분법으로 치환하면 실패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착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며, 이를 통해 고용 납세 지역경제 등에 기여하는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뚜기도 밝은 면만 있지는 않다.

‘착하다’는 표현은 타인이 평가할 말이지, 스스로에게 붙일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착한~’을 남발하는 것은 ‘내가 하면 선(善)’이란 독선과 오만으로 비친다. 실질보다 작명과 프레이밍에 치중할수록 정책 효과와 진정성에 의구심만 커지게 마련이다. 국정을 끌어가는 힘은 성과에 있지 포장이 아니다.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착한 정부’ 콤플렉스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