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금지할수록 스며든 일본 대중문화

일본을 금하다
1970~1980년대 한국 어린이들은 TV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에 열광했다.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1998년 이전까지 대부분 한국 사람은 아톰이 ‘국산 로봇’인 줄 알고 있었다. 프로축구팀 ‘포항 아톰스’의 마스코트가 아톰이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TV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의 한국판 제목이었다.

《일본을 금하다》의 저자 김성민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는 이런 경험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것을 거부한다. ‘금지’와 ‘월경’이 공존하는 수십 년간의 일본 대중문화 금지 메커니즘이 아톰의 사례에 깊숙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일본 대중문화 금지와 관련된 현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해방 이후 ‘왜색(倭色) 척결’ 차원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금지됐다. 그러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그 양상은 복잡하게 전개됐다. 일본 문화가 한국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정식 수입된 일제 라디오에서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은 금지됐지만, 그 곡이 수록된 음반은 밀수돼 레코드 가게에서 버젓이 판매됐다. 이후 1970년대 TV의 보편적 보급, 카세트테이프 등 복제 미디어의 보급은 일본 TV 프로와 대중음악의 인기가 치솟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저자는 “아무리 바깥의 존재를 ‘위험하고 불결한 것’으로 규정하고 공고한 방어 장치를 작동시켜도, 어느새 뒤섞여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야말로 문화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글항아리, 260쪽, 1만5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