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빈스윙 1400번…지옥훈련으로 단신 약점 지운 '작은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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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향, 6언더파 몰아쳐 스코티시오픈 역전 우승“우승 생각 전혀 못했어요.”
"골프백 늦게 와 빌려서 연습…몸 덜 풀려 1,2R 오버파 부진
타수 차 커 마음 비웠는데…" 브리티시오픈 앞두고 자신감
키 작지만 스윙 밸런스 좋아 270~280야드 장타 '펑펑'
네살 때 아버지 권유로 입문, 2012년 미국 LPGA투어 직행
‘작은 거인’ 이미향(24·KB금융그룹)이 6타 차를 뒤집는 화끈한 역전 드라마를 썼다. 31일(한국시간)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애버딘에셋매니지먼트레이디스스코티시오픈(총상금 150만달러)에서다. 박성현(US여자오픈), 김인경(마라톤클래식)에 이어 한국은 3주 연속 우승컵을 가져왔다.최종일 6타 줄인 ‘화끈한 뒤집기’
이미향은 이날 스코틀랜드 노스에어셔의 던도널드 링크스코스(파72·6390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를 기록한 이미향은 선배 허미정(28·대방건설)과 카리 웹(호주)을 1타 차로 제치고 통산 2승째를 신고했다. 올 시즌 첫 승이자 비바람이 강한 링크스코스에서 수확한 첫 번째 트로피다. 우승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를 추가한 그는 상금 순위를 19위로 끌어올렸다.
대회 참가 과정부터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 항공편이 늦게 뜬 탓에 대회장에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다. 설상가상으로 골프채는 개막일 하루 전에야 도착했다. 이미향은 “어쩔 수 없이 골프채를 빌려 연습해야 했다”며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고 털어놨다. 몸이 덜 풀린 탓인지 1라운드 1오버파, 2라운드 3오버파를 쳤다. 선두와 9타차까지 벌어졌다.반전이 시작된 건 3라운드에서부터다. 18번홀(파5) 이글을 포함해 4타를 줄이며 이븐파를 만들었다. 하지만 공동 선두인 김세영(24·미래에셋), 웹을 따라잡기엔 6타가 더 필요했다. 역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이미향은 “워낙 타수 차가 커 우승보다 다음주 열리는 브리티시오픈에 대비한 리허설로 삼자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라운드에 나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 역전 우승을 노린 김세영이 오히려 3타를 잃고 흔들렸다. 14번홀(파5) 칩샷 이글로 한때 7언더파까지 내달았던 웹마저 16번(파4), 17번홀(파4)에서 보기, 더블보기를 잇달아 범하며 3타를 까먹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참사’가 벌어지는 사이 이미향은 18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오히려 웹과의 격차를 2타차로 벌린 채 경기를 마쳤다. 웹은 17번홀에서 깊은 벙커에 들어간 티샷을 홀컵 반대 방향으로 쳐내는 해프닝까지 벌였지만, 세 번째 샷마저 그린 옆 벙커로 들어가면서 더블보기로 무너졌다. 웹에게 남은 기회는 18번홀 이글. 그래야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는 두 번째 샷을 벙커에 빠뜨리면서 버디에 그치고 말았다. 웹은 경기가 끝난 뒤 “18번홀에 리더보드가 없어 이글이 필요한지도 몰랐다”며 “만약 알았더라면 벙커에서 세 번째 샷을 그렇게 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4살 때 입문 하루 1400개 스윙 ‘노력형 천재’
이미향은 4세 때 사업가인 아버지 이영구 씨(68)의 권유로 골프를 배웠다. 162㎝의 작은 키에도 270~280야드를 쉽게 때리는 장타가 이때 기틀이 잡혔다. 비결은 밸런스 스윙과 빈스윙이다. 이미향의 스승인 양찬국 프로는 “눈을 감고 하루 45분씩 스윙연습을 했다”며 “계단이나 연습장 난간에 발을 반쯤 걸쳐놓고 하는 빈스윙을 하루 1400개씩 매일 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균형 잡기 스윙 훈련을 통해 부드러운 스윙에서도 임팩트 순간 가속도가 극대화됐고, 비바람이 강한 링크스코스 특유의 악천후 속에서도 안정된 샷을 날릴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골프전문학교인 함평골프고에 진한한 그는 국내투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LPGA투어에 도전해 2부투어를 거쳐 2012년 루키로 정규투어에 정식 데뷔했다. LPGA투어 생애 첫 승은 2014년 일본에서 열린 미즈노클래식.이미향은 “곧 열리는 브리티시오픈을 앞두고 자신감을 찾게 됐다”며 2주 연속 우승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18번홀에서 이글을 잡아낸 유선영(31·JDX)과 마지막 날 뒷심 부족으로 미끄럼을 탄 김세영이 3언더파 공동 6위, 2주 연속 우승을 노렸던 김인경(29·한화)이 1언더파 공동 9위로 경기를 마쳤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