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잇단 '중국 반도체 경계론'…무역제재 카드 꺼내나

30년전 미·일 경쟁 데자뷔…"중국과 일본의 상황은 달라"
미국 내에서 '중국 반도체'에 대한 경계론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반도체 굴기'(堀起·산업 부흥)를 외치는 중국 업체들에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1일(현지시간) 중국 당국이 주도하는 대형기금들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직접적인 정부 보조금이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피하고자 공적기금을 활용하는 식으로 반도체 지원책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년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한 것은 공적펀드"라며 "이들 펀드의 경영진은 상당수 전직 기술관료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7일 기사에서도 "중국이 미국의 마이크로칩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며 경고음을 울린 바 있다.

미 당국자들의 위기감도 다르지 않다.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도 "중국이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면서 중국의 저가공세로 미국 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미국 의회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중국의 반도체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때문에 철강 등 정치쟁점화한 품목에 더해 반도체도 미국의 대중 무역제재 조치에 포함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무역제재를 비롯해 외국인의 미국 반도체 투자의 문턱을 높이고 엄격한 수출 통제에 나서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생존경쟁'이 지난 1980년대 '미·일 반도체 전쟁'과 오버랩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미국은 일본 업체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덤핑'을 했다며 일본산 수입물량을 제한했다.

이러한 제재는 효과를 내면서 일본 업체들은 줄줄이 무너졌고, 미국이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상황은 다를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주로 미국 시장에 반도체를 수출했던 80년대 일본과 달리,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반도체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이 때문에 미국의 무역제재 조치가 별다른 효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