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의 정치세계] 북한전문가 "북한 문제, DJ 노무현 시절 방식으론 해결 못해"

남북협상 경험이 있는 북한문제 전문가는 “현 시점에서 대화 제의는 번지수가 틀린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는 남북 상황이 크게 달라진 만큼 그 당시의 사고로 접근해서는 절대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북한이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느껴 우리가 우위에 선 입장에서 의미있는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사실상 손에 놓게 돼 군사적으로 우위에 선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거라는 논지였다. 북한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핵 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 핵 동결카드로 대북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 등 담판을 시도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사실상 손에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 현 정부의 남북상황에 대해 세가지 다른 점을 지적했다. 우선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았고 북한이 원한 대화인 만큼 우리 정부가 우위에 선 입장에서 남북대화를 주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됨에 따라 적어도 군사적으로 북한이 절대 우위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핵을 사실상 보유한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다.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뤄진 남북대화는 남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북한은 우리 지원이 필요했고, 우리는 평화 분위기 정착이 필요해 상호 의미있는 대화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거의 손에 넣게 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핵 보유국과 비보유국의 위치는 천지차이다. 군사적으로 힘의 균형추가 북한으로 쏠린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의 대화제의를 들어줄 이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핵 보유를 전제로 우리가 아닌 미국과 담판을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싶어한다는 설명이다.

둘째 차이점은 북한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화돼있어 우리 내부의 대화 분위기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남북이 분단돼있는 현실에서 10년전에도 남남갈등이 있었지만 경제협력 등 실질적인 남북대화의 성과로 반대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보수진영을 설득하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당은 현 정부의 대북 대화 제의 등에 문제를 제기했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조기 배치에 제동을 거는 듯한 정부의 자세를 성토해왔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다시 강경해지자 “대화제의는 헛발질”이라며 ‘베를린 구상’의 재검토 또는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 정부는 대북문제에 대해 보수진영의 제재 강화 압박과 커지는 진보진영의 대화론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 신세다. 북한의 ICBM 도발에 따라 일단 강한 재제로 방향을 틀었지만 대화를 포기할 수 없는 새 정부의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루는 게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핵무기 보유는 세계 열강을 끌어들이는 ‘초대장’과 같은 성격을 지녀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핵무기에 관한한 세계 주요 강대국은 모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려 한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 다른 상황서 이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당장 중국에 이어 러시아가 북한을 옹호하고 나서면서 한반도 문제 해법이 더 꼬여버렸다. 그는 “세계 강대국은 다 한마디씩 하려한다”며 “이해관계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는 ‘현 시점에서 대화 무용론’을 제기했다. 북한이 사실상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대화를 하더라도 우리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결론은 핵을 동결하는 선에서 어떤 합의든 이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핵 동결을 토대로 불가침 합의와 대북 제재 완화 등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북한이 핵폐기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동결을 하더라도 우리로선 앞으로 수세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재창 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