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0년 장수 증권기업 나오게 해야

60년 역사 신영·부국·한양 같은 중소 증권사 맞춤 지원책 마련
초장수 우량 금융업체 늘려야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
코스피지수가 최고치 기록을 경신한 올해는 외국인 직접투자 허용 25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자본시장 국제화 정책의 일환이던 이 조치 이후 한국 증시는 크게 성장했다. 많은 증권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했다. 환갑 넘게 장수한 회사들도 있다. 신영, 부국, 한양증권은 창업 당시 회사명을 유지하며 큰 소유권 변동 없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들 세 장수 증권사는 세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보수적 성장 전략을 추구해온 중소형 증권사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창설을 전후해 설립된 3사는 무모한 기업 확장을 시도하지 않았다. 고위험 자산 투자를 경계하고 자산건전성과 자본적정성을 중시했다. 그 결과 NICE평가에 따르면 신영증권의 자산 총계는 8조5000억원으로 업계 7위다. 부국증권의 총자산은 1조4000억원으로 업계 15위다. 한양증권의 유동자산과 비(非)유동자산 등 자산 총합은 1조1000억원으로 업계 17위다.둘째, 가족 기업과 전문경영인 기업의 장점을 결합시켰다. 장수 회사들은 오너 가족 중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경영 일선에 전문경영인을 중용하고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했다. 1971년 이후 회사 창업 멤버였던 원국희 회장 가족이 이끌어온 신영증권, 한일합섬 그룹의 창업주 가족이 최대주주인 부국증권, 한양대 운영재단인 한양학원 가족이 오너로 있는 한양증권은 사장단에 전문경영인을 두고 이들에게 비교적 긴 재직 기간을 보장했다.

셋째,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해왔다. 2002년부터 자산운영업을 개척해온 신영증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산운영 분야 강자다. 최근에는 세대별 자산관리 상품 및 PB팀 제도를 개발해 빼어난 실적을 올렸다. 부국증권은 채권 거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제한된 사업 범위에도 불구하고 한양증권이 수익을 올려온 데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안전자산에 치중한 투자 전략이 한몫했다.

한국 증권 역사의 산 증인인 이들 장수 증권사들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현재 세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거대 증권사들의 도전이 거세다. 2016년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이 공식화된 이후 대형 증권사 몸집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자본 규모가 작은 증권사들은 사업 기회 축소와 수익 창출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둘째, 핀테크(금융기술) 혁명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계기로 국내에도 본격화한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접목 바람은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증권계도 예외는 아니다. 스마트폰 주식 거래와 빅데이터 투자 자문,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로보어드바이저 등 신상품과 업태가 속출하고 있다. 창업 60주년을 넘긴 증권사들이 시대적 조류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재정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관련 인력과 기술을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책 불투명성이 걸림돌이다. 문재인 정부는 차별성 있는 금융산업 발전 방안을 아직 내놓고 있지 않다. 서비스산업의 업그레이드를 꾀하겠다고 하지만 증권산업 성장 비전은 접하기 어렵다. 중소기업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대선 공약은 물론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중소 규모 증권사를 위한 맞춤형 정책의 향방은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들 관록의 증권사가 저력을 살려 100년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에도 영국의 로이드, 스위스의 롬바드오디에, 미국의 골드만삭스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초장수 우량 금융업체가 늘어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